영화 ‘풍산개’ 감독 전재홍·배우 윤계상
노 개런티·순제작비 2억 ‘도전’ “돈 아닌 열정으로 만든 영화”
평양 오가는 배달부 ‘풍산’역 대사 없이 얼굴로 내면 담아
노 개런티·순제작비 2억 ‘도전’ “돈 아닌 열정으로 만든 영화”
평양 오가는 배달부 ‘풍산’역 대사 없이 얼굴로 내면 담아
머리를 굴려본들, ‘사서 고생’이란 결론에 직행할 게 뻔한 작품이었다.
고작이란 말이 어울릴 법한 순제작비 2억여원으로 극장판 상업영화를 만든다? 장대 하나로 휴전선 철책을 뛰어넘어 3시간 만에 평양을 다녀오는 정체불명의 배달부를 120분 상영시간 내내 대사 한마디 없이 표현한다?
전재홍(34·아래 왼쪽 사진) 감독과 배우 윤계상(33·오른쪽)은 결국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영화 <풍산개>에 올라탔다. 이들은 “열정을 갖고 도전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사실 계산 빠른 머리가 먼저 움직였다면 덥석 손에 쥘 수 없는 작품이었다.
■ ‘김기덕 사단’의 전재홍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라. 나를 뛰어넘으라.” 지난해 10월, 김기덕 감독은 이 말과 함께 그에게 <풍산개> 연출을 안겼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당시 ‘김기덕필름’은 사무실도 없고, 돈도 거의 없는 폐허 같은 곳”이 된 상황이었다. 김 감독이 믿었던 후배 감독이 떠나고, <풍산개> 제작은 좌초하던 시기였다. 2005년 칸 영화제에 참석한 김 감독에게 무작정 찾아가 “영화를 배워보겠다”고 한 뒤 그의 연출부로 들어간 전재홍 감독도 정신적으로 힘겨운 시기를 통과하던 때였다. 2008년 장편 데뷔작 <아름답다>가 흥행에서 실패하고 좀처럼 후속작 기회를 잡지 못했던 탓이다. 그때 이 작품이 손을 내밀었다. “김기덕필름과 나를 다시 일으킬 영화라고 여겼다. 분단의 소재를 무겁지 않게 젊은 시각으로 다루고 싶었다. 액션과 멜로라는 큰 틀 안에 유머적 요소를 넣었다. ‘풍산’(윤계상)은 이념으로 나뉜 남북을 뛰어넘는 상징적 존재다.”
통일의 기원을 담은 이 영화는 ‘풍산’이 남쪽으로 망명한 북쪽 고위 인사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평양에서 데려오는 배달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 마지막에 국정원과 북한 공작원 요원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충돌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도 있다.
“돈이 아닌 열정으로 만든 영화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감독의 말처럼, 스태프까지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이익이 나면 막내 스태프까지 할당된 지분율만큼 수익을 나눈다. 관객 50만명을 넘어야 스태프들이 임금을 넘어서는 보너스를 받는 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감독으로선 흥행 실패가 곧 스태프의 임금을 희생시키는 꼴이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블랙코미디류의 웃음과 감정의 인과관계가 생략된 실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이 영화는 23일 개봉한다. 전재홍 감독은 원로화가 김흥수씨의 외손자로, 말더듬증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성악을 대학에서도 전공했다.
■ ‘풍산’이 된 윤계상 얼마 전 한 방송사 가요프로그램에서 그룹 ‘지오디’(god) 멤버들이 오랜만에 뭉쳐 노래할 때도 역시나 그는 그 무대에 서지 않았다. 2004년 지오디를 떠나 연기자로 들어선 뒤 철저히 연기자로 자신을 각인시키려 해왔지만, 그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대중적 성공과 멀었다. 대작드라마 <로드넘버원>까지 시청률 10%를 넘기지 못하고 끝난 지점에서 제의가 온 작품이 <풍산개>였다. 김기덕 감독이 쓴 기이한 사내가 주인공인 영화, 여기에 “노 개런티”란 조건. 그는 “하겠다”고 했다. 액션스쿨에서 한달간 훈련하며 체중도 6킬로그램을 뺐다. 보통 다른 영화 50회차 촬영(하루 촬영을 1회차)에 해당되는 분량을 한달 25회차로 끝낸 강행군이었다. “그간의 작품이 성공했다면 <풍산개>를 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선택했다. 열정만으로 만든 작품이라 의미가 있다고 봤다. 배우로서 언제 한번 이렇게 열심히 해보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풍산개>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불안감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가수 출신 윤계상이란 배우를 재발견하는 작품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그가 어디쪽 사람인지 과거가 추적되지 않도록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게 설정했다”는 ‘풍산’의 내면을 얼굴에 담아내며 자신의 연기의 폭을 좀더 넓혀냈다. ‘노 개런티’였으나, 배우로선 밑지지 않은 선택을 한 셈이다.
마침 그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한의사 ‘윤필주’ 역을 맡아 높은 시청률과 함께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내 성격은 필주와 풍산의 중간 정도”라며 웃었다. 부드러운 필주와 거친 풍산의 극단을 오가다 그 어딘가에서 배우 윤계상이 나아갈 방향을 본 듯한 웃음이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연합뉴스, 김기덕필름 제공
전재홍(34·왼쪽 사진) 감독과 배우 윤계상(33·오른쪽)
마침 그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한의사 ‘윤필주’ 역을 맡아 높은 시청률과 함께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내 성격은 필주와 풍산의 중간 정도”라며 웃었다. 부드러운 필주와 거친 풍산의 극단을 오가다 그 어딘가에서 배우 윤계상이 나아갈 방향을 본 듯한 웃음이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연합뉴스, 김기덕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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