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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한국 고전공포영화 ‘마술같은 불온함’

등록 2011-06-26 20:01

박윤교의 망령 시리즈 <망령의 곡>
박윤교의 망령 시리즈 <망령의 곡>
허지웅의 극장뎐
‘망령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기획전이 6월 한달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중이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 공포영화 대표작들을 모아 상영하는 기획전이다. <하녀>와 같은 스릴러부터 특수촬영물 <우주괴인 왕마귀>, 박윤교의 망령 시리즈 <망령의 곡>(사진)과 <망령의 웨딩드레스>, 한국 공포영화의 금자탑이라 할 만한 고영남의 <깊은 밤 갑자기>, 그리고 괴담 사극의 대명사 <여곡성>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무료로 상영되고 있다.

나는 한국의 고전공포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물론 장르 자체의 발전이 불비했던 시대적 시장적 한계를 고려할 때 ‘한국 고전공포영화’란 범주 안에는 스릴러부터 종교적 색채가 강한 권선징악극, 특수촬영물, 잔혹 성애물, 정통 호러 등의 하위 장르가 모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취향이긴 하다. 호러 장르 자체의 인기가 사그라든 마당에 60년대부터 80년대라는 애매한 시기의 한국 공포영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니. 아, 이게 대체 무슨 해괴한 취향이란 말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이 악취미에는 다음과 같은 추상적인 변명이 가능하다. 한국 고전공포영화에는 확실히 마술과도 같은 힘이 존재하고, 나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자들은 그 힘 앞에 어찌해도 어찌할 도리 없이 끌리고 있을 뿐이라는 설명 말이다.

수십년에 걸친 군사독재의 혼란기에 영화의 성격과 배급을 결정했던 건 팔할이 문화 정책과 이데올로기였다. 영화 산업의 질적 성장이 도무지 곤란했던 환경의 모순과 맥락을 앞에 두고, 우리의 공포영화들은 그것을 얼렁뚱땅 비껴가고 스쳐가고 모른 척하고 수수방관하거나 급기야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다. 김기영, 이만희 등 작가들이 이룩했던 장르적 성취는 70년대 유신정권의 영화법에 의해 주저앉았다. 할리우드 영화 한편을 수입하기 위한 찍어내기식 제작 풍토(수입쿼터제도) 안에서도 장르물에 뜻을 둔 사람들은 특유의 고집과 끈기로 절름발이로나마 그 역사를 지속해나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마저 80년대 컬러텔레비전의 보급과 <전설의 고향>류의 관습화된 괴담들의 범람, 재탕 앞에 명멸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돌연변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때의 한국 공포영화는 같은 시기의 다른 극영화들은 물론, 외국 공포영화들과도 확연히 다른 호흡과 서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불균질한 한국 고전공포영화만의 개성을 ‘마술과도 같은 불온함’이라는 표현을 들어 종종 설명하려 애쓴다. 이러한 성격은 지금의 한국 공포영화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국의 공포영화 장르는 80년대 중후반 이후 그 명맥이 거의 단절됐다가 90년대 중반 김성홍의 <손톱>, <올가미>를 거쳐 마침내 박기형의 <여고괴담>으로 부활한 것이기 때문이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한국 공포영화를 일종의 섬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영화들은 오직 그때만 존재했으며, 더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역사와 잊혀진 기억 속에서 예의 불온함은 더욱더 강력한 마술과도 같은 힘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당대의 영화적 유산은 희미하게나마 박찬욱, 봉준호 등 젊은 작가들에 의해 전수되어 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의미한 자취를 내보이고 있다. 그들의 영화 속을 떠도는 유전자와도 같은 인장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영화라는 것이 세대를 초월해 숨쉬는 유기체에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지금 당장 영상자료원을 찾아가 이 놀랍도록 음험하고 불온하며 종종 마술처럼 당신을 사로잡는 미지의 과거를 확인해보시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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