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시사회 가보니
문소리·박철민 등 목소리 연기
2D 화면 ‘섬세한 색채’ 돋보여
‘꿈과 자유’ 등 원작 주제에 충실
문소리·박철민 등 목소리 연기
2D 화면 ‘섬세한 색채’ 돋보여
‘꿈과 자유’ 등 원작 주제에 충실
동화 속 삽화에서 허름했던 ‘잎싹’은 스크린에서 커다란 눈망울을 연신 깜박거리는 예쁜 암탉이 됐다. 어디 눈망울만 예쁠까. 꽁지에 한 송이 꽃까지 달고 허둥대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4차원’이다. 제 체온으로 품어 깨운 아들 청둥오리 ‘초록’과 달리 잎싹은 헤엄도 못 치고 날 수도 없다. 넘어지고 물에 빠지고 상처가 나도 자식부터 챙기는, 자식이 쑥쑥 커가는 동안 자신은 차츰 늙어가는 잎싹의 모습은 세상 대부분의 어미와 닮았다.
심재명 대표의 명필름이 6년 동안 공들여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28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13일 시사회에서 공개됐다.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는 동화가 주는 슬프고 따뜻한 정서를 담아내면서도 영화적 재미를 살리기 위해 고심한 티가 뚜렷하다. “요즘 3디(D)가 대세지만, 딱딱한 가공의 세계 같은 3디로는 이 작품의 정서를 표현할 수 없었다”는 오성윤 감독의 말처럼, 2디(D)로 제작된 화면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물론 화려한 볼거리를 즐기는 관객은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력만으로 밀어붙이는 영화가 쏟아지는 틈새에서 섬세한 색채의 그림에 스토리의 힘을 녹이려 한 이 영화의 선택은 적확해 보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을 벗어나 숲으로 나온 암탉 잎싹과 그가 기른 청둥오리 초록을 통해 꿈과 자유, 삶의 의지, 숭고한 희생정신 등을 그린 원작의 깊은 주제 의식을 충실히 구현한다. 양계장에서 쳇바퀴 돌듯 정해진 시간에 같은 모이를 먹고 주인이 가져갈 알 낳기를 반복하던 잎싹은 마당에 나가 자기 알을 품기를 간절히 꿈꾼다. 버려지는 ‘폐계’ 더미에 섞여 양계장 탈출에 성공한 잎싹은 늠름한 청둥오리 ‘나그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마당보다 더 큰 숲으로 나가게 된다. 잎싹은 버려진 오리알을 품고, 자신을 엄마로 여기는 아기 오리와 함께 족제비를 피해 숲 너머 늪으로 이사한다. 청둥오리 초록은 크면서 자신과 엄마가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자신과 닮은 청둥오리떼를 따라 엄마를 떠난다.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면서 숲 속의 부동산 중개인이자 잎싹의 친구인 수다쟁이 야생수달 ‘달수’를 새로 추가해 작품에 생기를 더했다.
문소리(잎싹), 최민식(나그네), 유승호(초록), 박철민(달수) 등의 목소리 연기는 각 캐릭터의 분위기에 전반적으로 잘 들어맞는다. 특히 박철민은 특유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코믹한 입담을 선보이며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영화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초록이 파수꾼을 뽑는 대회에 나갔다’란 동화 속 한 구절에 살을 입혀 만든 10여분의 비행 대회는 영화 종반부 하이라이트. 청둥오리들의 ‘의외로 박진감 넘치는’ 대결은 달수의 현란한 해설과 맞물려 색다른 쾌감을 준다.
동화를 읽은 독자라면, 영화가 원작의 다소 충격적인 결말을 따를지 자연스레 의문이 들기 마련. 심재명 대표도 “라스트신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고백했다. 영화는 결국 원작의 길을 택하면서 슬픈 여운을 그대로 옮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못지않은 귀여운 캐릭터, 재패니메이션의 철학적인 감성에도 뒤지지 않는 탄탄한 시나리오는 그간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찾기 힘들었던 미덕이다. 지난달 개봉한 또다른 국산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에 이은 신선한 성취라고 할 만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다음달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중국에서 개봉한다. 멋 부리지 않고 기본을 지킨 영화의 정직함이 나라 밖 관객에게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명필름·오돌또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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