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티켓파워’ 퇴조 뚜렷 트위터 등 입소문 영향력 커져
톱배우없는 ‘써니’ 700만 돌파 현빈 ‘만추’는 84만명에 그쳐
톱배우없는 ‘써니’ 700만 돌파 현빈 ‘만추’는 84만명에 그쳐
지난해 11월 개봉한 한석규·김혜수 주연 영화 <이층의 악당>은 관객 60만명에 그쳤다. 한달 뒤 극장에 걸린 <워리어스 웨이>는 주연배우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며 떠들썩하게 홍보했지만, 관객은 43만명밖에 들지 않았다. 지난 2월 선보인 <만추>는 때마침 불어닥친 주인공 현빈의 ‘신드롬’을 타고 영화 인지도를 높였지만, 100만(84만명) 문턱까지 넘지는 못했다.
반면 노장배우 이순재·윤소정·송재호·김수미 등이 주연을 맡은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지난 2월 개봉 뒤 164만명이나 모았다.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제작이 두번이나 ‘엎어졌던’ 이 영화는 뭉클한 이야기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손익분기점(80만명)의 두배를 넘겼다. 유호정·심은경 등 중견·신인배우 14명이 주연급으로 나선 강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5월4일 개봉)도 흥행 순풍을 타면서 22일 현재 관객 700만명을 넘어섰다. <써니>의 이안나 프로듀서는 “대부분 톱클래스 배우들이 아니지만, 캐릭터에 딱 맞게 영화에 녹아들어갔다”고 평했다.
올해 들어 충무로는 톱배우 없는 영화들이 잇따라 선전하고 있다. <써니>, <그대를 사랑합니다>, 송새벽과 이시영 주연의 <위험한 상견례> 같은 스타배우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는 영화들이 성공하면서, 배우 이름값이 흥행을 이끄는 ‘티켓파워’의 퇴조가 더욱 뚜렷해지는 추세다.
22일 현재 올 상반기 관객순위 1위 <써니>부터 5위 <아이들>까지 영화를 보면, 눈에 띄는 톱스타급 배우는 김명민 정도다. 톱배우 한두명에 기대지 않고, 여러 배우들이 비슷한 중량감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지난해만 해도 관객순위 1~5위 영화들 가운데 원빈(<아저씨>), 송강호·강동원(<의형제>), 차승원(<포화 속으로>) 등 스타급 주연작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과도 대조된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배우 이름값으로 개봉 첫주 최소 50만을 불러들일 수 있어야 ‘티켓파워’가 있다고 보는데, 그런 배우는 현재 사실상 없다”고 단언했다.
이처럼 배우의 흥행 영향력이 약해진 데는 인터넷과 트위터 등의 영향력 급증을 꼽는 분석이 많다. 온라인상에 퍼진 감상평이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판단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영화진흥위원회가 전국 15~49살 남녀 2000명을 상대로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을 물은 결과에서도 영화 내용과 줄거리(90.9%)가 가장 높았고, 장르(81.2%), 주변인의 평가(72.7%), 배우(71.6%), 흥행성적·순위(59%) 차례였다. 같은 조사에서 영화 정보를 얻는 주요 통로도 인터넷(56.1%)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 대비 20%나 높아진 수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써니>도 인터넷 등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장기상영에 들어간 경우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온라인 등) 영화 정보 채널이 다양해져 스타마케팅에 의존하던 힘이 요즘 더 약해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개봉 전 출연진 이름만으로 비디오판권을 미리 팔던 시장이 2000년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스타배우의 ‘티켓파워’를 구체적으로 가늠할 근거 또한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재 엘제이필름 대표는 “영화 개봉 전 인지도를 높이는 스타배우의 홍보·마케팅 파워가 작지 않다고 보지만, 이것이 그대로 관객 동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결국 영화 자체의 재미와 감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제작사 대표도 “영화 투자자들은 여전히 스타를 원하지만, 관객 눈높이가 높아져 비슷한 장르를 답습하거나 영화의 질이 떨어지면 스타배우 이름값은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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