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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리를 죽인 형제 용서할 길은…

등록 2011-07-24 20:11

영화 <그을린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
허지웅의 극장뎐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은 충격적인 반전 따위의 수사로 소비되기 쉬운 영화다. 호기심을 사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드라마의 굴곡보다 본연의 질문과 의지에 관심을 쏟아야 할 영화를 만나게 된다. <그을린 사랑>이 바로 그런 영화다. <그을린 사랑>의 방점은 수수께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모두 풀린 이후 피를 토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뱉어내며 이후의 삶을 모색해내려는 억지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생떼를 쓰고 ‘뗑깡’을 놓으며 인간이 인간다울 때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어느 곳에 닿으려 발버둥친다. 우리는 그것을 숭고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을린 사랑>은 숭고함에 관한 이야기다. 자,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를 죽인 형제를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쌍둥이 남매는 유언장을 받아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언장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주문을 하고 있었다. 첫째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찾아 내 편지를 전달할 것. 둘째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큰오빠를 찾아 내 편지를 전달할 것. 셋째, 앞선 두개의 주문이 달성되지 못할 경우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말 것. 남매는 유언을 따라 어머니의 인생을 관통하는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와 오빠를 찾아낸다. 모두 마주한 그 길 위에서, 그들은 말이 없다.

<그을린 사랑>의 무대는 가상의 중동 국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이 공간이 레바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잠시 역사적 맥락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레바논은 비잔틴 제국의 영토일 때부터 뿌리깊은 기독교(마론파) 지역이었다. 그랬던 것이 오스만 제국에 지배되면서 급속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결국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5:5 정도의 비율을 이루게 되었다. 세계대전과 이스라엘 건국 이후 요르단 내전을 거치면서 고향을 빼앗긴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에 유입되었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는 기독교 민병대와 이슬람교도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 복수와 그에 대한 복수와, 다시 그에 대한 복수가 이어지던 나날들이었다. <그을린 사랑>은 바로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좇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가담했었다. 쌍둥이 남매는 아버지와 오빠를 찾기 위해 그때 그 시절을 추적해야만 한다.

<그을린 사랑>을 보고 있으면 레바논 내전의 역사가 우리의 사연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에 대해 소름 끼칠 정도로 자각하게 된다. 우리와 우리 형제 사이의 악연이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라는 거대한 맥락과 결부된 파국에서 비롯된 것일 때, 우리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가해자나 피해자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어떻게 용서하고 용서받을 것인가.

영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진실을 찾을 것. 그리고 모든 것이 명백해졌을 때, 함께 살아갈 용기와 의지를 갈구할 것. <그을린 사랑>은 진실을 안다는 것의 고단함과 피폐함,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갈 의지를 모색하는 행위의 숭고함에 대해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외치는 영화다. 자기 반성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조차 망각하고 수만가지 서로 다른 낯빛과 변명으로 자기만의 주관적인 역사를 창조해내는 사람들의 나라에서, 이 영화의 생떼는 매우 선명하고 처연하게 우리를 겨누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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