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광구>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하지원. 석유시추선에 출몰한 괴물과 싸우는 해저장비 매니저로 열연했다.
국내 첫 3D 블록버스터 ‘7광구’의 하지원
촬영전 잠수·오토바이 극기훈련 주변에선 “철인경기 나가봐라”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지는 공포 스토리·인물 치밀함은 아쉬워
촬영전 잠수·오토바이 극기훈련 주변에선 “철인경기 나가봐라”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지는 공포 스토리·인물 치밀함은 아쉬워
엄마는 연기이고, 뭐고, 마음이 애달프다. “지원아, 앞으로는 멜로만 해라.”
최근에 몇편 몰아서 액션 작품 한답시고, 딸이 촬영 현장에서 링거를 팔에 꽂았다고 하지 않나, 집으로 의사가 오지 않나, 영 보기 안쓰러워서다. “철인 8종경기 나가야 하는 것 아니야?” 이번 영화 찍으려고 근육을 키워 3㎏을 찌웠다니, 여배우에게 좀 실례가 될 만한 얘기가 주변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사지가 저에겐 미용이 아니라,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치료의 개념이예요.”
그러면서 웃는 하지원(33)의 다리에 시선이 잠시 머문 건, 순전히 군살없이 탄탄한 그의 다리 근육의 건강미가 뿜어낸 기운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
석유시추선의 대원들과 괴물의 사투를 다룬 국내 최초 3D 블록버스터 영화 <7광구>(4일 개봉)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 못지 않게, 하지원이란 배우에 한껏 빚진 영화다. 구르고, 떨어지고, 매달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총을 쏘며 괴물과 맞서 싸우는, 액션의 한묶음을 하지원은 감당해낸다. 하지원이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스턴트우먼 ‘길라임’이 몸을 사리지 않고 <7광구>를 찍은 듯한 잔상이 스쳐간다면, 그건 괜한 느낌이 아니다. <7광구>를 먼저 찍은 뒤 <시크릿 가든>을 촬영했다는 하지원조차 고개를 갸웃하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하지원이 (연기)한 건지, 내가 하지원의 대역을 한 건지, 길라임이 한 건지, 나도 헷갈려요.”
그를 만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조선 여형사로 검술을 해내더니(드라마 <다모>, 영화 <형사>), 권투선수 역을 하다 코뼈가 휘어지기도 하고(영화 <1번가의 기적>), 스턴트우먼 길라임에서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지금은 5개월간 탁구를 배우며 촬영하는 영화 <코리아>에서 탁구선수로 변신했다.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느냐”는 지인들의 물음을 그대로 돌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객도 신나고, 저도 재미있는 것을 선택하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예쁘다’‘내숭’ 이런 말보다 ‘멋있는 여자’란 말을 더 좋아하거든요.”
특히 이 영화를 해보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헬기가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서 괴생명체와 혈투를 벌이잖아요. 괴물보다 더 무섭게 보일 수 있는 거침없는 여전사 역할이어서 도전하고 싶었죠.”
그는 “<다모> 등 앞선 작품에서도 액션이 있었지만, 그땐 좀 여리고 마음이 흔들리는 면이 있었다”며 웃었다.
하지원이 맡은 여전사 ‘해준’은 7광구 심해에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석유를 반드시 퍼올리겠다는 해저장비 매니저다. 대원들은 다 죽고, 영화 막판 해준과 괴물은 1대1의 처절한 싸움을 펼친다. 망망대해와 괴물이 앞에 있다고 치고, 연기한 뒤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이 더해지는 쉽지 않은 연기였다.
“(영화 속) 괴물도 참 안 됐다고 생각했어요. (석유를 얻겠다는) 인간의 탐욕에 의해 괴생명체가 만들어지고, 다시 인간이 죽이려고 하는거잖아요.”
하지원은 이 영화를 위해 스킨스쿠버 자격증과 오토바이 면허증도 땄다. 작품에 필요한 것을 꼭 배워놓느라 “촬영 전이 더 바쁘다”는 습관이 또 도진 것이다. “비오는 날도 비옷 입고 오토바이 연습을 해서 한번에 붙었는데, 같이 시험 본 아저씨들이 기립박수를 쳐줬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남북탁구 단일팀의 이야기를 다룬 <코리아> 영화촬영까지 끝나면 짧은머리를 좀 기르고 싶다고 했다. “사실 <시크릿가든> 이후 남성팬이 늘어나면서, 소개팅 제안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고 한다. “체력 관리가 되면 액션도 더 하고 싶지만, 진정성있는 멜로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멜로도 너무 쉬운 멜로는 좀…”이라고 하니, 이젠 멜로영화나 드라마를 하라고 채근한 엄마의 걱정이 줄어들기는 할까?
제작비 100억원이 들어간 이 대작은 확실히 다른 여배우로는 대체가 어려울 정도로 강한 연기를 소화한 하지원의 고군분투에 기댄다. 그러나 이야기와 인물이 밀도있게 그려지지 못해 영화 초·중반부 코미디마저 힘을 잃고, 대원들이 죽어나가도, 안타까움이 깊이 있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런 탓에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진 관객들이 하지원의 모습에서마저 필요 이상으로 ‘길라임’의 잔영을 떠올리고, 급기야 ‘김주원(현빈) 없는 길라임은 외로워’란 잡생각에까지 이르게되면, 이 영화로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제공 JK필름, CJ E&M
특히 이 영화를 해보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헬기가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서 괴생명체와 혈투를 벌이잖아요. 괴물보다 더 무섭게 보일 수 있는 거침없는 여전사 역할이어서 도전하고 싶었죠.”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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