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시나리오를 쓴 박상연(39) 작가
‘Korea’ 거꾸로 읽은 ‘Aerok’ 고지
지긋지긋한 한국-북한 대치 상징
2020년 배경 남북전쟁도 구상중
지긋지긋한 한국-북한 대치 상징
2020년 배경 남북전쟁도 구상중
혹시나 영화 <고지전>(감독 장훈)을 보고 그 주 무대인 애록고지가 어디였을까 궁금했다면, 애록의 영문 표기(Aerok)부터 3초간 다시 뚫어지게 볼 필요가 있다.
“애록고지는 없어요. 코리아(Korea)의 영문 표기를 거꾸로 읽어 만든 이름이죠. 남북간 대결이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애록고지가 지금 한국의 상황과 다를 게 없다는 거죠.”
지난달 20일 개봉해 300만 돌파를 앞둔 <고지전> 시나리오를 쓴 박상연(39) 작가의 말이다. 그의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얘기이지만, 이 영화 속 전쟁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다 마무리된 줄 알았던 전투가 애록고지 위에서 또 꼬리를 문다.
“관객들도 ‘아니, 이 전쟁 왜 이렇게 안 끝나’ 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어요. 참혹하고 치열하면서도 지루했던 한국전쟁 마지막 2년여의 전투를 말이죠.”
그는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쓰면서 ‘아, 내가 영화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2000년)가 다룬 남북의 비극이 어떻게 왔는지 그 원점에 서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박상연 작가를 만났다. 그는 요즘 한석규가 출연할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집필중이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6시까지 작업한다는 그는 오후 5시에 약속시간을 잡았다.
박상연 작가는 한국 영화판에 대중성과 묵직한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은 두 편의 남북대치 영화로 이름을 아로새겼다. 이번 <고지전>과 함께 남북병사의 우정과 분단의 아픔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의 원작소설 <디엠제트>(DMZ)를 쓴 작가가 바로 그다.
“<…제이에스에이>가 개봉한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도 있어서 그땐 남북관계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컸는데, 다시 이런 반전영화를 쓰게 됐네요.”
<고지전>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3년,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남북간 전투와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다 죽어간 병사들의 이야기이다. 담배를 내려놓은 그는 양손을 들어 체를 치는 시늉을 했다. “전쟁이란 거대한 체가 있다고 했을 때, 3년 전쟁기간 동안 그 체에서 흘러내리지 않고 버틴 병사들은 어땠을까란 생각에서 영화는 출발했죠.” 그러면서 “네가 사람이냐?”라고 소리지르는 친구 강은표 중위(신하균)에게 감정이 건조해진 눈빛으로 말하는 김수혁 중위(고수)의 대사를 작가는 읊었다. “‘사람은 진작에 다 죽었어. 3년 (전쟁) 지랄에 사람이 살아남았겠어?’라고 말하죠. 선하고 전쟁을 두려워했던 수혁도 이렇게 무섭게 변하는 게 전쟁인 거죠.” 영화에서는 살기 위해 아군에게마저 총을 겨눴던 악어중대원들의 고통스러운 비밀 등을 통해 전쟁은 어느 쪽에게 승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도덕성을 송두리째 파괴시켜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이번엔 공동집필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대사를 인용했다. “미실이 ‘세상은 종으로도, 횡으로도 나눌 수 있다’고 말해요.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권력도 얻을지 모르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이득 없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죠.”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휴전협정이 맺어졌다는 소식에 영화 속 병사들은 기뻐한다. 하지만 “협정은 밤 10시에 효력이 발생한다”는 협정문 ‘5조63항’ 때문에 남은 ‘12시간의 애록고지 전투’에 다시 나서는 그들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시나리오 쓰다가 막혔을 때 협정문 63항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보자마자 마지막 스토리를 어떻게 갈지 5초 만에 구상이 될 정도였죠. 자료를 찾아보니 협정문 쓰고 밤 10시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폭격과 전투가 실제로 엄청났더군요.” 영화는 전쟁터의 처참한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고지 위 벙커에서 남북 병사들이 물건을 주고받거나, ‘전선야곡’ 같은 노래를 나눠 부르는 모습 등을 통해 웃음과 감흥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과도하게 많은 메시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평도 있다. 그도 이런 지적은 인정했다. “‘우린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야’란 대사 같은 것은 안 해도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 스스로 그렇게 느껴주면 더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반전 메시지를 정확히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는 또 전쟁영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2020년 미래의 남북전쟁이라는데, “전쟁하면 정말 둘 다 작살나는구나, 전쟁해선 안 되겠구나란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지독한 반전주의자라는 그다운 발상이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지전>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3년,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남북간 전투와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다 죽어간 병사들의 이야기이다. 담배를 내려놓은 그는 양손을 들어 체를 치는 시늉을 했다. “전쟁이란 거대한 체가 있다고 했을 때, 3년 전쟁기간 동안 그 체에서 흘러내리지 않고 버틴 병사들은 어땠을까란 생각에서 영화는 출발했죠.” 그러면서 “네가 사람이냐?”라고 소리지르는 친구 강은표 중위(신하균)에게 감정이 건조해진 눈빛으로 말하는 김수혁 중위(고수)의 대사를 작가는 읊었다. “‘사람은 진작에 다 죽었어. 3년 (전쟁) 지랄에 사람이 살아남았겠어?’라고 말하죠. 선하고 전쟁을 두려워했던 수혁도 이렇게 무섭게 변하는 게 전쟁인 거죠.” 영화에서는 살기 위해 아군에게마저 총을 겨눴던 악어중대원들의 고통스러운 비밀 등을 통해 전쟁은 어느 쪽에게 승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도덕성을 송두리째 파괴시켜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이번엔 공동집필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대사를 인용했다. “미실이 ‘세상은 종으로도, 횡으로도 나눌 수 있다’고 말해요.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권력도 얻을지 모르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이득 없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죠.”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휴전협정이 맺어졌다는 소식에 영화 속 병사들은 기뻐한다. 하지만 “협정은 밤 10시에 효력이 발생한다”는 협정문 ‘5조63항’ 때문에 남은 ‘12시간의 애록고지 전투’에 다시 나서는 그들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시나리오 쓰다가 막혔을 때 협정문 63항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보자마자 마지막 스토리를 어떻게 갈지 5초 만에 구상이 될 정도였죠. 자료를 찾아보니 협정문 쓰고 밤 10시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폭격과 전투가 실제로 엄청났더군요.” 영화는 전쟁터의 처참한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고지 위 벙커에서 남북 병사들이 물건을 주고받거나, ‘전선야곡’ 같은 노래를 나눠 부르는 모습 등을 통해 웃음과 감흥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과도하게 많은 메시지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평도 있다. 그도 이런 지적은 인정했다. “‘우린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야’란 대사 같은 것은 안 해도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 스스로 그렇게 느껴주면 더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반전 메시지를 정확히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는 또 전쟁영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2020년 미래의 남북전쟁이라는데, “전쟁하면 정말 둘 다 작살나는구나, 전쟁해선 안 되겠구나란 걸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지독한 반전주의자라는 그다운 발상이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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