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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예술의 진화인가 상품화인가

등록 2011-08-14 19:56

남다은의 환등상자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빈티지 옷가게를 운영하는 프랑스인 남자가 짓궂게 말한다. “50달러에 사서 몇천달러에 팔기도 하죠.”

그의 이름은 티에리 게타. 평범한 이 남자의 유일하게 평범하지 않은 점이라면, 한시도 손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 그는 취미가 아니라 병적인 집착으로 주변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찍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가 자신의 작품 앞에 앉아 빈티지 옷 앞에서 짓던 표정으로 “부르는 게 값이지요. 여긴 거의 금광이나 다름없다니까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스타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막대한 자본, 대단한 허세, 멈추지 않는 인정 욕구는 예술적 창의력과 욕망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이 농담 같은 남자가 가짜 예술인가, 대중예술이 이미 농담인가.

거리예술을 하는 사촌의 작업 광경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면서 티에리 게타는 점점 거리예술가들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는 뉴욕이든, 파리든, 높은 빌딩 위든, 건물 지붕이든, 낮이든, 밤이든, 그들을 따라다니며, 때로는 망을 봐주고, 부족한 일손을 메워주며 촬영을 하고 또 한다. 그는 무엇을 보기 위해, 혹은 무엇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열성적으로 찍는 걸까. 그의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도 하고, 작업도 하는 예술가들조차 영문을 알지 못한다. 그는 그라피티라는 상징적 퍼포먼스의 정치성에 동의하는 것 같지도 않고, 하위 문화의 기록자로서 자긍심과 책임감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미안한 말이지만, 자신이 찍고 있는 대상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해 보이는 그는 때때로 순정적이지만 멍청해 보인다. 지난 몇년간 그가 찍어둔 테이프 수천개는 창고에 쓰레기더미처럼 그냥 쌓여 있다. 말하자면 거리예술가들이 곧 지워지고 철거될 그림을 그리고 설치하는 그 순간의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듯, 티에리 역시 카메라로 그 순간을 담는 행위 자체만을 중시한다. 분명 여기에는 ‘기록자’가 아닌 ‘예술가’에 대한 집요한 모방과 동경이 있다. 그런 그 앞에, 그토록 열망하던 뱅크시, 베일에 싸인 거리예술가의 신화가 나타나 촬영을 허락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를 둘러싼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이름인 뱅크시는 거리예술에 대한 티에리의 영화를 본 뒤, 미친 듯한 질주욕망을 완성된 예술로 형상화하는 재능이 그에게는 없음을 꿰뚫어본다. 뱅크시는 차라리 자신이 티에리를 찍기로 하는데, 이 관계의 역전은 티에리에게 오랜 시간 흠모해온 자리의 주인이 될 기회를 준다. 그가 예술가보다는 기업가의 마인드로, 세태를 읽어내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홍보의 문을 뚫자, 놀랍게도 유명 잡지부터 개인 컬렉터까지 반응을 해온다. 이 남자는 확실히 자본의 중심에서 스스로를 스타로 부각시키며 노는 법을 알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마저 메이저 경매회사의 상품이 되는 시대에, 사건을 이슈화하는 데 천재적인 티에리는 21세기의 예술가인가, 아닌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18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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