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크라운>의 래리 크라운(톰 행크스)와 메르세데스 테이노(줄리아 로버츠)
‘로맨틱 크라운’
처음 래리 크라운(톰 행크스)에겐 ‘오늘’이 있었다. 직장인 대형마트에서는 종종 ‘이달의 사원’으로 선정될 만큼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은행 대출이 끼어 있긴 하지만 깨끗한 교외에 번듯한 집도 있다. 이혼?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갑작스레 해고를 통보받기 전까지는. 감상에 젖어 ‘어제’를 곱씹거나 불안에 떨며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안정적인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재취업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대출금을 감당하긴 너무나 버겁다. 어제 놓쳐버린 대학 졸업장이 잃어버린 오늘을 대신할, 새로운 내일의 열쇠가 되길 기대하면서 래리는 전문대학의 늦깎이 신입생이 된다.
톰 행크스의 두번째 연출작이자,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주인공으로도 출연하는 <로맨틱 크라운>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퇴출당한 래리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린다. 래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스쿠터족’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한다. 새내기의 캠퍼스 낭만에 풋풋한 연애가 빠질 수 없는 법.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상대는 ‘스피치217’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 메르세데스 테이노(줄리아 로버츠)다. 메르세데스는 종일 집에서 인터넷으로 포르노나 보고 가끔 블로그를 하면서 일을 한다고 주장하는, 책 두 권을 쓴 멀쩡한 지식인의 얼굴을 한 남편에게 질릴 대로 질린 상태. 각각 경제적, 정서적으로 위기에 놓인 두 중년의 만남에 터질 것 같은 설렘이나 주체하기 힘든 열정은 없다. 래리의 두근두근 캠퍼스 생활에 밀려 둘의 연애가 크게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단한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이 영화가 다소 심심할 수도 있지만, <로맨틱 크라운>의 커플이 왕년의 로맨틱 코미디 스타다운 귀여움으로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엔 경제적 위기를 겪는 미국 중산층, 더 구체적으로는 ‘위기의 중년 남성’의 쓸쓸함이 배어 있다.
취업 당시 문제 되지 않았던 학력이 갑작스런 해고의 핑계가 되고, 자기 계발이나 좌절밖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중년의 재취업 준비생. 해군 취사병 20년의 경력과 늦깎이 전문대생이라는 학력의, 대출금 압력에 집까지 정리한 중년의 래리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획기적인 제2의 인생을 맞기란 불가능할 테다. 대학 졸업장을 따도 고용이 불안정할 거란 건 학사 졸업장을 가진 전 직장 동료가 해고당하고 피자 배달원으로 나타나는 영화 후반부에 증명된다. 하긴, 기름값이 아까워 장만한, 탈탈거리는 중고 스쿠터 뒤에 탄 사랑스런 새 연인보다 더 멋진 로또가 어딨을까. <로맨틱 크라운>은 래리처럼 질펀한 엉덩이에 인상 좋은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한, 성실했던 어제가 안정적인 오늘을 보장하지 못하는 힘든 중년(특히 남성)을 위한 판타지다. 17일 개봉.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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