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감독 드니 빌뇌브)
관객 4만 ‘흥행기준’ 4배 넘어
폭력 이기는 사랑 ‘충격 결말’
대작 틈새 관객 선택권 넓혀
폭력 이기는 사랑 ‘충격 결말’
대작 틈새 관객 선택권 넓혀
130분짜리 영화가 끝났다. 관객의 가슴엔 오히려 그 시점부터 영화적 감흥이 더 불 붙은 듯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엔딩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비극적 사랑이 주는 여운 때문에 금방 일어나지 못했어요. 오늘이 두번째 관람입니다.”
관객 성보현(63)씨는 대학 동문들을 데리고 한번 더 온 것이라고 했다. 같이 영화를 본 조해지(70)씨는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비극을 목도하고 결국 자신의 눈을 뽑아버리지만, 이 영화에선 처절한 비극을 사랑의 위대함으로 끊으려 하지 않나”라며 “영화가 이렇게 끝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17일 서울 광화문 예술영화 전용관 ‘씨네큐브’ 1관엔 오후 3시대 상영시간에 291석 좌석의 3분의 2가량이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20대 젊은 남녀부터 중노년층까지 관객도 다양했다.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감독 드니 빌뇌브)이 대작이 쏟아진 여름 극장가에서 휘발성 강한 돌풍을 일으키며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이 영화는 17일 오전 현재 관객 4만800여명을 모았다. 독립·예술영화의 흥행 기준선인 ‘1만 관객’을 벌써 4배 이상 넘겼다. 전국 14개관 개봉으로 출발했지만, 18일부터 4개관이 추가돼 24개관으로 확대된다. 이 영화를 독립·예술영화 중심 상영관에서만 틀던 씨지브이가 관객의 반응이 좋자 일반 상영관 4개(서울 목동, 일산, 대전, 대구)를 더 확보하는 이례적 결정을 한 것이다.
<그을린 사랑>은 쌍둥이 남매가 전쟁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 사실도 몰랐던 형제를 찾아 편지를 전하라는 엄마의 유언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남매는 중동으로 떠나, 학생운동가에서 테러리스트, 교도소의 ‘72번 죄수’로 살았던 어머니의 흔적과, 자신들의 가족사에 얽힌 차마 믿기 힘든 비밀을 접하게 된다. <그을린 사랑>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편지를 줘야 할 아버지와 형제는 어디에 있는지, 하나둘 풀려갈수록 궁금증을 더 증폭시켜 관객이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관객들은 영화 막판 무방비 상태에서 충격적 진실이란 한방을 얻어맞고, 역사적 비극에서 폭발된 분노와 폭력을 더 큰 사랑과 용서로 허물고자 하는 편지의 결말을 보며 또한번 예기치 않은 전율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 수입·배급사인 티캐스트의 박지예 팀장은 “올여름 극장가에서 몇몇 대형영화에만 상영관이 집중되면서 관객에게 폭넓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다 보니 오히려 괜찮은 영화를 찾고 싶은 관객들에게 더 차별화된 영화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티캐스트 제공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티캐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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