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북촌방향’
홍상수 감독 ‘북촌방향’
홍상수 감독은 맨발에 샌들을 신고 행사장에 들어섰다. 왼쪽 어깨에 배낭 가방을 둘러메고, 손에 흰색 우산을 든 채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 입은 배우들과 나란히 앉았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 씨지브이압구정에서 열린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개막식의 개막작으로 국내 첫 상영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은 이날 그의 복장만큼이나 자유스럽고 유쾌한 영화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했던 <북촌방향>은 홍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이자 그의 두번째 흑백영화이기도 하다.
<북촌방향>은 영화감독 성준(유준상)이 5일간 서울 북촌 일대에서 겪는 이야기다. 그가 서울에 와서 친한 선배 영호(김상중), 영호의 후배이자 영화과 교수인 보람(송선미) 등과 술집에서 어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옛 애인 경진과 닮은 술집 여주인 예전(김보경)을 보고 당황해하면서도 점점 끌리게 된다.
영화 속 이야기만 보면 사실 간결하다. 하지만 홍 감독은 성준 일행과 함께 술집 ‘소설’이란 한 점으로 계속 되돌아오며 비슷한 상황을 겪고 비슷한 대화를 나누는 반복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아침-점심-저녁-밤, 다시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정상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 듯 시간의 엇박자를 일으킨다. 이게 정말 5일에 걸쳐 일어난 현실인지, 시간을 초월한 꿈같은 판타지인지도 점점 헷갈리게 만든다. 제목에선 <북촌방향>이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놓고, 관객들을 천연덕스럽게 미로에 빠뜨려놓는 실험을 감행하는 셈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감독은 의도적인 시간의 불일치와 반복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관객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주면서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환상인지 관객들이 알아서 사고하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며 “이런 시간적 유희를 통해 감독은 삶의 모호성과 우연성을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촌방향>은 시네마디지털영화제 인터넷 예매에서 2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관객의 관심을 받았고, 다음달 8일 개봉할 예정이다.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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