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침체 한국 애니산업에 활기
지원확충·소재 다변화 필요
지원확충·소재 다변화 필요
닭장에 갇혀 있던 암탉 ‘잎싹’이 생전 처음 알을 품어 부화한 것은 청둥오리 ‘초록’뿐만이 아니다. 한국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오랜 침체를 흔들어 깨워 날갯짓을 할 수 있는 근육도 키워냈다.
국내 애니메이션 사상 첫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사진·감독 오성윤·이하 암탉)은 지난 19일 손익분기점(150만)을 넘었고, 200만 고지로 날아가고 있다. 영화제작사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21일 “한국 애니메이션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패배감을 불식시키고, 국내 애니에 대한 투자자들과 관객의 관심을 환기시킨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암탉>은 작가 황선미씨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상업영화에서 검증된 시나리오 작가가 각색을 맡아 이야기의 힘을 탄탄히 갖췄다. 또 상업영화의 대중적 감각과 기획력을 갖춘 충무로 대표 제작사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기술을 축적한 ‘오돌또기’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가족 관객층을 흡수했다. <암탉>은 9월 말 중국 전역 8500개관 가운데 2000개관에서 상영돼 국외시장도 넘본다.
이처럼 <암탉>이 국내 애니메이션계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국내 애니메이션이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한 과제들이 많다.
심재명 대표는 “제작 초기 단계에선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렸는데, 개봉 이후엔 한국 2디(D)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란 생각 탓에 저녁 시간대 상영 기회를 갖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암탉>이 이런 인식에 균열을 일으켰지만, 투자자들과 극장 배급시장의 편견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이다.
<암탉>을 연출한 오성윤 감독은 “그림 작화 매수를 더 늘렸으면 좋았을 텐데, 확보된 제작비 규모 등을 고려해 청둥오리들의 경주 장면 등 중요한 컷에 작화의 수를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림의 완성도에서 불균형이 생긴 것이 아쉽다”고 했다.
국내 애니메이션의 체력이 향상되도록 정부와 공공기관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의 김준양 프로그래머는 “명필름 같은 큰 영화 제작사도 <암탉>을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6년)이 걸렸다”며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갖고도 중도에 포기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초기 예산 지원이 더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생계 걱정 탓에 국외 애니메이션의 그림을 주문받아 그려주는 하청에 머물거나, 유망한 인재들이 게임 등 다른 업계로 이탈하는 것을 개선할 실효성 있고 장기적인 지원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암탉>이 국내 가족용 애니메이션의 성공모델을 제시한 것을 발판 삼아 소재와 관객 타깃층의 다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잔혹 스릴러를 표방하며 한국 사회 계급 구조의 폭력성을 묻는 <돼지의 왕>, 로맨틱 코미디 <우리 별 일호와 얼룩소> 등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 개봉 대기 중이다. 최근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이상욱 프로듀서는 “작품의 가치를 알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런 작품들의 경우 극장에서 바로 간판을 내리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명필름, 오돌또기 제공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