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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동물영화와 동물의 권리

등록 2011-09-18 20:08

남다은의 환등상자 <마음이 2>
영화를 볼 때, 장르나 내용과는 관계없이 등장만으로도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 혹은 행위의 목록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극영화 속 동물의 등장이 그 목록에 있다. 고백하자면, 그 정도가 좀 과민한 편인데, 이를테면, 위대한 서부극을 볼 때조차 황야에 수도 없이 고꾸라지는 말들을 볼 용기를 몇 번이고 다잡고서야 가까스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동물에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들의 연기를 요구하는 장면들을 볼 때에도 어김없이 마음이 무겁다. 거창하게 동물과 영화의 윤리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영화 속 동물들은 늘 같은 물음으로 이끈다. 이들을 ‘배우’로 여길 것인가, 아닌가.

추석 연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추석 특선 영화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마음이 2>를 발견했다. 다이아몬드를 동물 박제에 숨겨 국외로 빼돌리려는 도둑들이 ‘마음이’라는 개의 새끼를 훔치고, 영리한 마음이가 그들을 뒤쫓는다는 내용의 이 영화를 볼 생각은 물론, 없었다. 그런데 문득 언젠가 보려고 미뤄 둔, 반려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그린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가 떠올랐다. 허구의 이야기 안에 동물이 등장해서 동물 자신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영화를 보았다. 네 개의 단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딱히 새롭다거나 ‘동물 중심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동물을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인간이 교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결국은 인간으로 수렴되는 영화에 가까워 보였다. 오락적 목적이 아니라, 동물들에 대한 선의로 만들어졌다는 전제 아래서도,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여전히 등장 동물들을 마음 편하게 보기는 어려웠다.

인간 배우들은 영화 속 세상이 허구라는 걸 알고, 그 허구를 진짜 현실이라고 착각하기 위해 애쓰며 연기를 한다. 그런데 동물들은 어떤가. 이들은 자신들이 허구의 테두리 안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을까. 아마 주인의 명령에 따를 뿐일 것이다. 나는 영화 속 동물들을 볼 때마다, 아무리 인간에 의해 감정과 본능이 조련되어 특정 표현을 한다고 해도, 인간화된 허구의 세계 속에 완전히 허구화되지 못한 실재의 생경함을 느낀다. 인간 배우는 가짜를 진짜처럼 표현할수록 관객의 지지를 얻지만, 동물은 가짜 세계를 비집고 나오는 진짜가 있을 때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생경함은 이들이 ‘연기’로 불릴 만한 행동을 하고 있어도, 실은 그 연기의 진정한 주체는 아니라는 간극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생경함이 누군가에게는 찬탄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나는 대체로 가혹하다고 느낀다. 심하게는 영화가 동물들의 ‘리얼’을 착취한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가 아무리 “보호자의 입회하에 안전하게 촬영되었다”고 명시할지라도 동물 ‘배우’들은 아역 배우들과 다르다. 그러니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처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CG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영화 속 동물을 볼 때마다, 이 심리적 궁지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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