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 신은정(40) 감독
다큐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신은정 감독
여성운동 진압·냉전 전파 등
묻혀있던 어두운 과거 담아
새달 미국서 첫 상영회 계획
여성운동 진압·냉전 전파 등
묻혀있던 어두운 과거 담아
새달 미국서 첫 상영회 계획
<정의란 무엇인가>의 지은이가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하버드대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특히 하버드대의 모토인 ‘베리타스’(라틴어로 진리·진실)는 다른 무엇보다도 ‘학문의 자유’를 앞세우는 진리의 전당으로서 이 대학의 드높은 지적 권위를 상징해왔다.
최근 한 한국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이처럼 막강한 하버드의 지적 권위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 논리를 제공해온 하버드의 감춰진 이면을 까발리는 <베리타스-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 신은정(40·사진) 감독이다. 혁명사 전문가로 유명한 남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미국 웬트워스공대)와 함께 보스턴에서 살고 있는 신 감독은 지난 5월부터 국내에 머물며 자신의 데뷔작인 이 다큐를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상영 행사장에서 만난 신 감독은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하버드대가 정부와 권력,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근처에 살던 그는, 고건 전 총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들을 비롯해 전세계 정치인·유력인사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하버드가 ‘진리의 전당’보다는 권력기구에 가깝다는 의혹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하버드의 과거를 전한다. 주류 지배계급인 백인 남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학생들이 여성 노동자의 민권운동을 직접 진압하러 나서기도 했던 역사부터, 제국주의 지배를 위해 하버드가 우생학이나 지역학을 적극 개발하고 퍼뜨렸던 전력 등을 촘촘한 사실 기록과 함께 전달한다. 냉전시대엔 중앙정보국(CIA)과 깊이 연결돼 미국 정부가 필요로 하는 신무기 개발이나 냉전 이데올로기 전파에 앞장서기도 했단다.
1970년대 중반 정부의 재정지원이 삭감되자 하버드가 택한 대학 운영 방식의 전환이 신자유주의 체제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 대목도 눈에 띈다. 그 시기부터 ‘하버드 매니지먼트’를 설립해 대학기금을 금융상품에 본격 투자하기 시작했고, 뉴욕 월가의 금융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다는 것. 하버드는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대학’의 선구적 모델이었다는 풀이다. 영화 속에는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를 비롯한 하버드 안팎의 지식인들이 대거 출연해 증언한다.
신 감독은 다음달 미국에서 첫 상영회를 계획하고 있다. 국제영화제 출품도 생각중이다. “대학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려는 장치로 구실해왔던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 없다”는 그는 “이 영화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대학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 감독은 촘스키 등 미국 지식인들로부터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등 국내 현실 참여 운동에도 동참해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최성욱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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