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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한 가정 통해 들여다본 이란 사회

등록 2011-10-30 20:28

남다은의 환등상자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씨민과 나데르. 결국 법원까지 오고 만 이 부부는 지금 자신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아내 씨민은 어린 딸의 미래를 위해 타국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편 나데르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고 맞선다.

아내는 실은 남편을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이란을 떠나고 싶은 것 같고, 남편은 아버지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이란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서로의 고집이 꺾일 시간을 벌려는 속셈인지, 부부는 일단 별거에 들어가기로 한다. 이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부부가 결국은 별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별거한 다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고작 어느 중산층 가정의 부부싸움을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어느새 가정 안의 사사로운 다툼을 넘어서는 사회적, 도덕적 담론을 설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설계도는 처음에는 그저 이런저런 상황들의 우연한 교차로 보이지만, 영화가 흐를수록 이 상황들은 마치 몸속의 혈관들처럼 치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나중에는 그중 하나를 잘라내면 전체가 죽어버리는 야심 찬 구조가 된다.

친정으로 가버린 씨민 대신, 치매 아버지를 보살피고 가사를 돕는 가정부를 구하는 나데르. 이제 그의 집에 아침마다 하층민 여성 소마예가 일하러 온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이 여인은 남편 몰래 일을 시작한 것 같고, 언제나 어린 딸을 데려오며 늘 피로에 젖어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터진다. 집에 돌아온 나데르가 침대에 묶여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 것. 집에는 아무도 없고 잠시 뒤 돌아온 소마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아니, 흥분한 나데르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그녀를 내쫓는데, 그 과정에서 그녀가 넘어진다. 다음 날, 나데르는 소마예가 유산했다는 걸 알게 되고 이제 법정 공방이 시작된다.

나데르는 소마예가 임신했던 걸 알면서도 밀었을까? 소마예는 치매 노인을 두고 어디를 갔던 걸까? 그녀의 유산은 정말 나데르 때문일까? 인물들은 서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바쁜데, 영화는 객관적인 자리에서 이들의 치졸한 언어 게임을 지켜볼 뿐이다. 플래시백이라도 등장해서 진실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누구의 말이 진심인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의 문제, 즉 사실을 추리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핵심은 사실을 둘러싼 것들, 이를테면 인물들 각자가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상황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오가는 논박, 감정, 이해관계, 신념 등을 이들이 내세우거나 감추고 갈등하는 모습에 있다. 마치 법정드라마를 보듯 그런 과정에 밀착해서 따라가다 보면, 궁극에는 이들의 계급, 성, 종교적 차이가 엮어내는 유동적인 그물망을 조망하게 되는데 정교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솜씨다. 그때, ‘누가 더 옳은가’에서 그때,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로 질문의 자리를 옮겨가게 하는 것. 이 영화의 힘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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