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추억을 파는 극장’서
노년층을 위한 100일 영화제
15편 상영…월요일 노래공연도
노년층을 위한 100일 영화제
15편 상영…월요일 노래공연도
입구에서 주는 국화빵 2개를 오물거리다 보면 ‘팥앙금’ 같은 달콤한 음악이 들려온다. 휴게실 한쪽에선 디제이가 턴테이블에 올린 레코드판이 돌아간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쏜살같이 내빼는 가을이 아쉬워, 요즘 신청곡 목록엔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팝송 ‘마이 웨이’가 많다. 배우만 폼 잡는 법 있나. 극장 복도에 깔린 ‘레드카펫’에서 으쓱대며 걸을 수도 있다.
시간 따라 건물도 조금씩 늙어가는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 ‘추억을 파는 극장’(옛 허리우드극장). 이곳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100일 영화제’(내년 2월9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노년층을 위해 2009년 1월 개관한 뒤 30만명 관객을 돌파한 기념으로 마련됐다. 국내외 고전명작 15편을 옛 35㎜ 영사기로 상영한다. 프랑스 영화 <남과 여>에 이어 4일부터 오드리 헵번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두번째로 선보이고 있다. 김은주(37) 극장 대표는 “어르신들이 다시 상영해달라고 요청한 작품 등을 선정했다”고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빠삐용> 등 외국영화와, “학교 동창끼리 극장에 와서 추억을 나눴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승현, 김정훈 주연의 <고교얄개> 등 한국영화들을 망라했다. “크리스마스에 어르신들도 캐럴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비교적 최신작인 <러브 액츄얼리>(2003)도 12월 중순께 상영작으로 넣었다. 매주 월요일엔 가수 송창식·윤형주 등 ‘쎄시봉 멤버’들을 빗대 어르신들로 꾸려진 ‘세시공연단’이 매회 상영 직전 공연도 한다. 매일 평일 2~3시대 상영엔 300석 단관이 꽉 찬다.
김 대표는 “모두 무삭제 오리지널판을 구했기 때문에 과거 상영 당시에 보지 못한 장면들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름 구매값으로 4000만원이 든 작품도 여럿 있다.
55살 이하 입장료 5000원, 55살 이상 관객은 2000원만 받는다. 에스케이(SK)케미칼에서 매년 1억2000만원을 후원받지만, 한 해 극장 운영액이 8억원이라 매년 2억~3억원씩 적자다. 올해 서울시가 3억원의 지원 예산을 없애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오랜만에 영화 구경을 한 노부부가 행복해하고, 지방에 계신 분들까지 오셔서 영화를 보실 때 뿌듯하다”고 했다.
혹여 김 대표가 부모님과 온 자녀들을 붙잡고 입장료 3000원을 다시 받아가라고 해도 당혹해하지 않기를.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녀에겐 2000원만 받거든요.”
송호진 기자, 사진 추억을 파는 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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