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얀 거탑>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토요판] [TV +] 김성윤의 덕후감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일본 영화 <하얀 거탑>(1966)을 봤다. 원작 소설도 일본 드라마도 보지 못했지만, 2007년 방영됐던 국내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던지라 관심을 갖고 챙겨봤다. 영화 내내 ‘아, 이건 누구누구의 배역이었지’ 하면서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그러고 보면 영화 자체에 몰입하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반성할 일이지만.
‘하얀 거탑’이 상징하는 것은 (드라마에선 불명확했지만 영화에선) 비교적 간명하다. 주인공 자이젠이 털어놓듯 “교수는 쇼군(將軍)”이고, 그런 맥락에서 그 쇼군이 살고 있는 대학병원은 마치 오사카성과도 같은 거대한 탑이다. 다만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명목상 현대라고는 하지만, 아직 현대화되지 않은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어쨌든 영화적 감식안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에겐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다. 주인공 자이젠 고로(국내 드라마에선 김명민이 연기했던 장준혁)와 그 주변상황을 보는 건 우리 시대의 리얼리티를 목도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흥미로운 건 자이젠의 친구 사토미(이선균이 연기했던 최도영)다.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이젠의 거의 유일한 맞수지만, 그의 ‘선함’은 드라마와는 다소 다른 캐릭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향한 다툼, 체면에 매인 관계, 각종 암투와 뒷거래 등등. 일본이나 한국이나 정해진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온갖 외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반면, 사토미가 취하는 캐릭터의 선함이란 그 자리가 비어 있을 뿐이지 어떻게 묘사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강조될 수도 있다.
최도영이나 사토미나 외골수라는 점에선 동일하다. 그들은 회의실이나 술집보다는 주로 현미경과 각종 기구가 있는 병리학 실험실에 있다. 의사는 ‘쇼군’이 아니라 학자라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점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최도영이 너무 착하다 싶을 정도로 환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반면, 사토미는 환자와는 거의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근대적 권력게임의 대안으로 철저한 과학을 내세웠던 셈인데,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자면 별 무리 없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권력에 집착하는 자이젠이 의술을 예술로 여기는 데 반해, 천생 학자로서 사토미는 의술을 과학으로 여기는 점이 그러하다.
그런데 국내 드라마에서 봤듯이 21세기의 대안(혹은 한국 사회의 대안)에는 한 가지가 더 첨부된다. 바로 ‘돌봄’의 문제다. 이 점은 외과 과장을 염원하는 ‘나쁜 남자’ 장준혁이 의술을 기술로 여기는 데 비해, ‘착한 남자’ 최도영이 의술을 인술로 여기는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지금 우리 사회가 무엇을 문제시하고 또 무엇을 대안으로 여기는지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감정노동에 가까울 정도로 시종일관 최도영은 따뜻한 어조로 환자를 돌본다.
여기서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엄마가 허리디스크 치료 중이다. 주사치료와 특수치료에 드는 비용이 매달 100만원 정도. 엄마가 불쌍한 어투로 한마디 했다. 우리 아들이 알바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차라리 한번에 수술을 받는 게 낫겠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담당 의사가 펄쩍 뛰며 화를 내더라. 수술을 판단하는 건 자기지, 환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서운하고 억울했다. 엄마는 그저 절박한 상황을 알리려던 것이었는데.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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