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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나쁜 기업들의 세상, 아이언맨만으론 안돼!

등록 2012-03-23 21:34

영화 <아이언맨2>의 한 장면.
영화 <아이언맨2>의 한 장면.
[토요판] [TV +] 김성윤의 덕후감
디시(DC) 코믹스가 됐든 마블 코믹스가 됐든,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히어로물 중에서도 특이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숙명적으로 초인이 된 게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해 히어로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물론 이런 내러티브가 1960년대 이후 코믹스와 그래픽 노블을 지배했다는 점은 익숙한 사실이다. 스파이더맨이든 울버린이든 한번쯤은 내면적 갈등이란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의 특징은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도시와 세계를 지키는 히어로가 더이상 노동자나 농민 계급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아이언맨>만의 특징은 히어로가 된 배경에 매우 실증적인(positive) 계기가 있다는 점이다. 악의 무리에 납치돼서 거기서 자기 회사의 무기를 발견하고 경악했던 그는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비록 군수업체이긴 하지만 사람 죽이는 기업에서 사람 살리는 기업이 돼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흥미롭게도 국내 개봉작은 이 단어를 ‘사회적 책임’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니까 배트맨이 자기의 뼈아픈 개인사와 중하층계급에 대한 동정심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히어로가 되는 반면, 아이언맨은 요즘 유행하는 사회과학 담론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지키기 위해 히어로가 됐다는 것이다. 그에게 불명확한 것은 없으며 시에스아르를 히어로의 과업으로 동일시한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전 지구적 금융위기에 즈음하여 시에스아르를 언급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 전만 하더라도 주주가치경영을 통해 단기 수익에 집중했던 것이 기업 경영의 관례였는데, 우리 시대의 영웅 아이언맨은 적어도 윤리 경영, 착한 경영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이런 설정이 가능해진 것일까.

영화, 사회과학 지식,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시에스아르라는 하나의 답을 찾아낸 것만 같다. 영화가 끝난 뒤에조차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배트맨도, 낭만적 기업가 정신과 ‘백마 탄 왕자’로 귀결했던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도 찾지 못했던 답이다. 분명 우리는 <아이언맨>을 통해 암묵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해답은 보통 그 안에 새로운 문제를 동기화하곤 한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으로서 시에스아르를 수행하지, 기업 차원에서 시에스아르를 수행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은 국내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운운하면서 사회적 기부 정도로 기업 이미지 세탁에 그치곤 하는 풍경과 묘하게 겹친다.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문제가 어디 그뿐일까. 대개의 히어로물이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국가가 전반적으로 무능력한 상황에 처했다고 묘사하는 맥락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슈퍼맨 등이 국가 대신에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아예’ 초월자였던 데 반해, 오늘날의 사회적 안전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구도가 잡혀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현실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일정 정도 관객의 거리두기가 가능한 반면,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이야기가 현실적인 만큼 상대적으로 몰입이 더 강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오늘날 시에스아르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인 것이란 이제 우리 중 그 누구도 더이상 국가와 같은 재래의 공적 기구를 상상할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언제 내팽개칠진 모르겠으나) 사회는 기업이 책임진다. 어쩌면 2008년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4.0’이 됐든 뭐가 됐든,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자기조정적 시장의 또다른 형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문화사회연구소연구원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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