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어머니>
민용근의 디렉터스 컷
10년 전쯤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본 어느 방송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그로 인해 난 극영화의 꿈을 잠시 접고, 몇 년간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병원 24시>라는 프로그램의 ‘우리 형은 다섯 살’ 편. 지적 장애로 인해 다섯 살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진 스무 살의 형과 그런 형을 돌보며 살아가는 열일곱 살 동생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지적 장애와 간질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형을 돌보려고 동생은 학업도 포기한 채 묵묵히 생계를 꾸려나간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 언제나 형에게 다정했고 단 한번 힘든 내색하지 않던 동생이 딱 한번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겨울, 갑자기 집을 나가겠다며 고집 피우는 형을 막아서다 꾹 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성을 잃은 형은 비키라며 소리치고, 동생은 도대체 왜 이러냐며 울먹이듯 소리친다. 좁은 마당에서의 몸싸움이 점점 격해지고, 멱살을 잡은 동생의 주먹이 금방이라도 형을 칠 것 같던 아슬아슬한 순간. 갑자기 카메라 뒤에서 손 하나가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아, 참아. 형한테 그러면 안 되잖아. 참아.”
동생의 팔을 한참 동안 잡고 있던 카메라 뒤의 그 손은 동생의 감정을 진정시킨 뒤에야 비로소 화면 뒤로 사라졌다.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건,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마치 게임의 규칙을 깨버린 것같이, 난데없이 튀어나왔던 그 손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마당에는 일촉즉발 상태에 있던 형제와 카메라를 든 연출자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돌발적인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던 그 손에서, 어떤 ‘마음’이 느껴졌다. 외로운 두 형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그 후로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유독 카메라 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이를 통해 연출자가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 서로 간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그 목소리의 느낌이 곧 연출자의 ‘마음’이며, 그 마음이 어쩌면 그 작품 자체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 <어머니>는 무척이나 사려 깊고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리던 고 이소선 여사의 생전 2년여의 시간을 담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태준식 감독은, 노동운동의 대모로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어머니의 모습보다, 평범한 일상 속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어머니가 보여주는 일상 속의 소소한 모습들은, 아들과 했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40여 년간 노동자를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투사적인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결국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울림을 만들어낸 일상의 순간들이 빛날 수 있었던 이유는 카메라 뒤에서 느껴지던 연출자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고, 손에 힘이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손톱을 잘라주던 모습들 속에서 느껴지던 연출자의 마음. 수많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결국엔 소중한 아들을 잃은 한 많은 어머니일 수밖에 없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는 이소선 어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그 어머니와 한 시대를 함께했던 수많은 자식들의 마음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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