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이례적 동시흥행
‘달팽이…’ ‘어머니’ ‘…건축가’
1일 관객수, 상위 10위권 진입
진솔한 삶의 묵직한 감흥 담아
열악한 제작환경 속 돌풍 주목
‘달팽이…’ ‘어머니’ ‘…건축가’
1일 관객수, 상위 10위권 진입
진솔한 삶의 묵직한 감흥 담아
열악한 제작환경 속 돌풍 주목
새 봄 국내 극장가에 유례 없는 이변이 벌어지고 있다. 극영화들의 허를 찌른 ‘다큐영화들의 역습’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담은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3월8일 개봉), 시청각 중복장애 남편과 척추장애 아내의 사랑과 소통을 다룬 <달팽이의 별>(감독 이승준·3월22일 개봉),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의 삶을 기록한 <어머니>(감독 태준식) 등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업 영화까지 모두 포함한 ‘한국영화 1일 관객수’에서 5~7위에 올라 있다. <달팽이의 별>과 <말하는 건축가>는 외화를 포함한 ‘1일 관객수’ 전체순위에서 4일 각각 7위와 10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독립영화 흥행선인 1만명을 넘어 1만3000여명을 모은 <달팽이의 별>과 2만3000명이 본 <말하는 건축가>는 다양성영화(독립·예술영화) 흥행순위에선 지난달 25일부터 5일까지 1, 2위를 달렸다. 5일 <어머니>까지 개봉하면서 ‘다큐영화 세편의 강세구도’가 형성됐다. 영화계에선 “전례 없는 상황”이란 반응이 나온다. 세편의 돌풍에는 입소문, 재관람, 단체관람의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달팽이의 별>의 조동성 프로듀서는 “교도소, 학교, 공공기관 등의 요청으로 단체상영회를 하고 있다”며 “입소문 덕에 개봉 2주차부터 관객수가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김화범 프로듀서도 “노동조합, 지역공동체연합모임 등의 단체관람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행사를 하면 다시 보러왔다는 관객들을 자주 만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 편 모두 주인공들의 삶이 주는 묵직한 감흥이 관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은 “울까봐 손수건을 준비했다가 유쾌하게 웃고 나왔다는 반응도 있고, 관객들이 서로를 보듬는 부부를 통해 관계와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소선 여사의 말씀을 경청하는 영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어머니> 김화범 피디), “인간과 자연을 배려한 건축가로 산 정기용 선생을 삶의 멘토로 느끼는 것 같다.”(<말하는 건축가> 정재은 감독) 이 작품들이 대중적 관심을 받는 이유에 대한 제작진의 설명이다.
다큐영화의 흥행 바람은 2009년 295만명을 모은 <워낭소리>의 돌풍과 2000년대 이래 누구든 손쉽게 디지털 영상을 만드는 환경이 정착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다큐영화 장르가 한층 친숙해진데다, 실제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의 힘’을 보여준 것도 관객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송환> 등을 연출한 김동원 감독은 “<워낭소리> 이후 다큐가 재미있다는 인식이 생겼고, 감독의 개성과 소재 다양성을 수용하는 관객의 관용도가 커진 것 같다”고 짚었다. 그는 “극영화는 연출된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지만, 다큐는 주인공이 실제로 존재하기에 감흥이 더 진하게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김화범 프로듀서는 “가치있는 삶을 원하고,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현상 속에서, 그 열망을 담은 다큐영화에 공감하는 것 같다”며 “3편 모두 메시지를 설득하려하지 않는 연출 때문에 관객에게 더 다가간 듯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피디는 또 “<달팽이의 별>은 방송연출 등을 한 독립피디, <말하는 건축가>는 장편영화 감독 출신, <어머니>는 독립다큐 감독의 작품”이라며 “창작 주체의 다양화로, 소재와 내용의 폭도 넓어졌다”고 덧붙였다.
영화계는 다큐영화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여성들과 노동의 관계를 짚은 <레드마리아>(26일·감독 경순), 영화내용과 관련된 실제 인물들이 연기자로 출연해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에 선 <두레소리>(5월11일·감독 조정래)가 곧 개봉하기 때문이다. 국립전통예술고 합창단의 창단실화를 극화한 <두레소리>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국악 등이 유쾌하고 뭉클하게 어우러져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다큐영화 강세는 일시적 현상이란 목소리도 많다. 열악한 제작환경 탓에 양질의 다큐영화 공급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달팽이의 별>은 미국·핀란드·일본 등의 다국적 제작비 지원이 예산의 숨통을 틔웠고, <어머니>도 시민후원금으로 개봉비용 등을 마련했다. <말하는 건축가>는 감독이 카드대출로 촬영비용을 충당한 뒤, 차후 제작비를 일부 지원받았다. 이런 환경 탓에 노동, 소외된 이웃들의 현장 등을 기록해온 독립 다큐 감독들은 제작·배급·상영을 상호 연대해 지원하기 위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이란 모임을 최근 발족하기도 했다. 한 독립다큐 프로듀서는 “현재 개봉관이 20개 안팎에 머무는 독립영화들의 상영기회가 더 확대되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예산도 좀더 늘리는 등 영화산업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제작·배급의 열악한 현실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크리에이티브 이스트·인디스토리·두타연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