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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내가 뽑은 부산영화제 남녀주연상

등록 2012-10-14 18:49수정 2012-10-14 20:11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개막식장을 비롯해 극장 앞 광장과 호텔 로비 등 곳곳에 레드 카펫이 깔렸다. 화려한 스타들이 그 위를 지나갔고, 수많은 관객들이 환호했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다녔지만 딱 두번, 레드 카펫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 적 있다. ‘이 배우가 저 위를 걷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간절하리만치 그런 기분을 들게 만든 두명의 배우가 이번 칼럼의 주인공이다. 비록 선정 기준의 주관성 탓에 공신력은 없겠지만, 이 지면을 빌려서나마 그들에게 무언가 개인적인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필자가 선정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인 셈이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홀리 모터스>의 ‘드니 라방’이다. 1999년 <폴라 X> 이후, 13년 만에 장편영화를 들고 나타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드니 라방을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사용한다. 이 영화는 정체불명의 리무진에 탄 채 수많은 인생으로 변신해 살아가는 ‘오스카’라는 남자의 하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드니 라방은 이 영화에서 거지 노파로, 암살자로, 광인으로, 가정적인 남편과 걱정 많은 아버지 등으로 수없이 변신한다. 영화는 다양하게 변모하는 오스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잡히지 않는 어떤 형상을 포착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속 드니 라방은 한명의 배우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한계치를 가뿐히 뛰어넘으며 본능과도 같은 경이로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무상한 세월로 인해 생긴 주름진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화 속에서 뿜어내는 광기와 에너지는 <퐁네프의 연인들>을 비롯한 그의 전작들을 능가할 정도이다. 변화무쌍한 얼굴과 동물적인 육체의 움직임은 드니 라방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다음으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여우주연상!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 수상자는 <전학>의 ‘마스다 리코’. 아마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이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전학>은 아시아 단편경쟁 부문에 출품된 가나이 준이치 감독의 단편영화이다.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하는 요코라는 여중생과 그 학급으로 새로 전학을 오게 된 리사의 짧은 우정과 이별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마스다 리코는 새로 전학 온 전학생 리사 역을 맡아 특유의 서늘한 표정을 보여준다. 전학 온 첫날, 반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리사는 이런 말로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나는 여기 있는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유일하게 리사에게 관심을 보이는 요코에게도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같다. “따라오지 마!(쓰이테코나이!)”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유폐시키려는 듯한 어린 소녀의 차갑고도 비밀스런 단호함은 배우 마스다 리코의 묘한 얼굴과 만나 생명력을 얻는다. 그의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와 학교를 떠나며 쓸쓸히 뒤돌아보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나는 이번 영화제에서 본 작품 중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경험했다. 오직 마스다 리코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두번 보았을 만큼, 이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의 연기력은 단연 돋보인다.

글을 쓰는 동안, 광기 어린 드니 라방과 무표정한 마스다 리코가 함께 레드 카펫에 오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것은 어떤 화려한 스타가 오르는 레드 카펫보다 더 짜릿하고 기괴하며, 멋진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뭐, 당장은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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