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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소시민 ‘호빗’의 여정이 심심한 까닭

등록 2012-12-21 19:39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우리는 지난 5년간 촛불을 들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했고 희망의 버스를 타고선 상처 입은 영혼을 ‘힐링’해왔다. 그 와중에 <호빗: 뜻밖의 여정>이란 영화가 개봉했는데, 적어도 향후 5년간은 영화 부제처럼 ‘뜻밖의 여정’에 들어서야 할 듯싶다.

각설하고, 이 영화의 내러티브에 집중하도록 하자.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호빗>은 <반지의 제왕>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호빗>의 주인공은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프로도의 삼촌, 빌보 배긴스다.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 시대적으로 앞선 이야기이고, 영화사적으로 따진다면 결국 <반지의 제왕>의 후광을 업고 만들어진 영화인 셈이다. 그렇기에 <반지의 제왕>을 염두에 놓고 보면 두고두고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은 비교적 지루하다. 나 역시도 헤드뱅잉을 하면서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물론 트롤과 승강이를 벌이고 오크를 피해 요정 나라 리벤델을 거친 뒤, 스톤 자이언트의 절벽을 통과해 고블린 부족과 전투를 벌이는 여정부터는 잠이 확 달아난다. 볼거리를 기대한 관객에게 보답하는 건 영화가 시작한지 3분의 1이 지난 시점부터인 셈이다.

그럼에도 <반지의 제왕>만큼 스릴이 넘치지 않는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이야기의 갈등구조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괴수는 실체가 없는 존재였다. 이 괴수는 사우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어떤 힘으로서만 존재하는 망령일 뿐이다. 그에 반해 <호빗>에서는 괴수의 자리에 아조그라는 인물과 스마우그라는 용 한 마리를 가져다놨다.

실체 없음과 실체 있음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결정적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절대반지를 가지고 있는 동안 사우론의 힘에 시달리면서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야만 했다. 마치 해리 포터와 볼드모트가 서로 공명했듯 말이다. 실체가 없는 악은 선한 존재에게조차 내면화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무섭다. 그러나 사우론이 부활하지 않은 시대를 다룬 <호빗>에서는 주인공 빌보에게 그러한 내면적 갈등의 계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악의 세력은 외재화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나’라는 주체는 순수한 존재로 상상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빌보 배긴스는 ‘순수한 민중’이라는 형상을 이상화하고 있는 인물이다. 애초에 그는 중간계(middle earth)에 엄존하는 적대적 현실과는 무관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저 맛있는 음식과 재밌는 책을 즐기면서 평안과 안락을 미덕으로 삼는 소시민이다. 그러다 ‘뜻밖의 여정’에 휘말리는데, 영화 <호빗>은 바로 이 소시민이야말로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출할 메시아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그런데 여기에는 이중적인 아이러니가 도사리고 있다. 사실 빌보는 난쟁이족이 잃어버린 왕국과 보물을 되찾는 여정에 동참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모험을 향한 빌보의 열정은 보물을 독점하고자 하는 난쟁이족에 의해 ‘계약’의 형태로 착취당하게 된다(난쟁이족의 물질욕은 내년 이맘때 2편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아이러니는 바로 이 소시민적 영웅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절대반지에 힘입은 빌보의 활약으로 난쟁이-요정-인간 사이의 갈등은 봉합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궁극의 악, 사우론의 부활을 앞당기는 여정이기도 하다.

간달프는 그저 이렇게 말한다. “왜 호빗이냐고? 내가 두려울 때 용기를 주거든.” 이 말은 어디선가 들어봤음 직한 표현, ‘사람이 먼저다’라는 캠페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절대반지를 좇는 잉여의 쾌락과 순수한 민중이라는 형상은 얼마든지 서로 교통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사람 그 자체가 해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결과적으로 우리는 중간계의 존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분간은 망령에 시달리게 됐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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