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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사생팬 원조는 ‘여성 국극’에 있었다

등록 2013-04-16 19:56수정 2013-04-17 10:36

여성국극의 장면을 담은 포스터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배우 조금앵(왼쪽)씨와 박미숙씨가 출연한 1956년 작 <시집 안 가요>, 김경수(왼쪽)씨와 김진진씨가 출연한 1958년 작 <별 하나>, 임춘앵(왼쪽)씨와 김진진씨가 출연한 1951년 작 <공주궁의 비밀>.  배급사 ‘영희야 놀자’ 제공
여성국극의 장면을 담은 포스터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배우 조금앵(왼쪽)씨와 박미숙씨가 출연한 1956년 작 <시집 안 가요>, 김경수(왼쪽)씨와 김진진씨가 출연한 1958년 작 <별 하나>, 임춘앵(왼쪽)씨와 김진진씨가 출연한 1951년 작 <공주궁의 비밀>. 배급사 ‘영희야 놀자’ 제공
여성배우로만 꾸린 국악 뮤지컬
‘무용담과 사랑 이야기’ 50년대 인기
여성팬들 남장배우에 애정 공세
혈서편지·패물 주고 납치 시도도
당시의 열정 다룬 다큐 18일 개봉
*사생팬 : 연예인 일거수일투족 쫓는 팬

“오빠부대? 그런 건 댈 게 아니야. (팬레터가) 전부 혈서야.”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시절, 사람들을 달래준 것은 역시 문화였다. 그 중심에 여성 국극이 있었다. 1950년대, 여성배우로만 극단을 꾸려 국악 뮤지컬 형식으로 공연하는 여성 국극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고 국극 배우 김진진(80)씨는 전했다.

18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하는 <왕자가 된 소녀들>은 1950년대 한국인들을 울리고 웃겼던 여성 국극 배우들, 그리고 이들의 연기에 열광하며 순정을 쏟아부었던 팬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제는 이름조차 낯설어진 여성 국극의 세계, 그리고 세대와 장르를 초월하는 연기자들과 팬의 뜨거운 열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열혈 팬들의 실로 뜨거운 애정 공세다. 김진진씨의 말처럼 지금의 오빠부대도 못 따라갈 수준이다. 당시를 회고하는 두 팬의 말은 1950년대 국극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결혼할 때 장래 배우자한테 ‘내가 좋아하는 이런 언니들(여성국극 남장배우)이 있다, 이해를 해주겠냐’는 말을 하고 결혼할 정도였어요.” “여성 국극이 너무 좋아서 그때 돈으로 2억원을 들여서 아예 극단을 만들었어. 다 날렸지만, 그래도 하나도 후회 안 해.”

여성팬들은 남장 여성 창극 배우를 만나기 위해 가출은 일상다반사였고, 패물도 갖다 바쳤다. 배우들을 납치하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는 아예 극단에 들어와 스타 배우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배우 이옥천(67)씨는 여성팬들의 요구를 못 이겨 혼례상까지 차리고 ‘가짜 장가’를 두번이나 갔다. 허숙자(72)씨는 지금도 여느 남자못지 않게 목소리가 걸걸한데, 한창때는 “아이 낳을 때 옆에서 ‘남자가 애낳는다’고 구경을 하더라”고 했다. 박미숙(73)씨는 지금까지도 팬클럽이 5개나 있다.

여성 국극은 남장 배우들이 나와 우리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호쾌한 무용담과 사랑 이야기를 펼쳤다. 남장 배우들은 중국 경극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을 하고 여성팬들의 혼을 뺐다. <무영탑> <공주궁의 비밀> <선화공주> 등이 대표적 인기작들인데, <공자 로미오와 미랑 줄리엣>처럼 외국 소설을 극화한 것도 있었다. 1940년대 후반 김소희·박귀희·임춘앵 등 여성 국악인들이 국악원에서 떨어져나와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한 것이 여성 국극의 뿌리가 됐고, 2세대로 꼽히는 조금앵, 김진진, 김혜리, 허숙자, 박미숙, 이옥천 등이 195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1960년대 텔레비전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볼거리로 눈을 돌렸고, 여성만으로 이뤄진 극단에 대해 남성 제도권 문화인들이 ‘싸구려’ ‘저질’ 예술이라고 폄하하면서 국극은 위축되고 만다.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겼어도 여성들으로만 구성된 국극계에는 유독 정부 지원을 배제하면서 여성 국극은 1960년대 초반 급격히 몰락했다.

여성 국극 전성기를 이끌던 주역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고, 남아 있는 이들도 대부분 70~80대들이다. 원로 여성국극 배우 김혜리(73)씨는 9일 시사회 뒤 “예술로서 훌륭한 가치가 없다면 어떻게 그렇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겠냐”며 “전성기때 최고 예인들과 함께 최고 기량을 펼쳤던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뒤를 이을 후배들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혜정 감독(37)은 “국극배우 선생님들의 한풀이가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며 “아름다운 우리 전통 극 문화를 살려내는 다리 구실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부문과 서울 성소수자를 위한 영화제(LGBT) 폐막작으로 상영되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올해에도 인도 IWART아시아영성영화제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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