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오른쪽)에게 연하장을 주는 오 차장. 두 사람의 관계는 유사 부자관계에 가깝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미생>과 <이끼>의 윤태호 작가
<미생>과 <이끼>의 윤태호 작가
재밌는 우연이다. <미생>의 장그래가 재계약에 실패하고 원 인터내셔널을 떠났던 화요일(7월16일), <성균관 스캔들>과 <몬스타>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은 드라마 <미생>의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를 등지고 쓸쓸히 걸어 나오던 장그래가 티브이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우연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이기도 하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 등 웹툰이 ‘원 소스 멀티유스’의 중심에 선 요즘, 동시대 최고 웹툰 가운데 하나인 <미생>의 영상 콘텐츠화 소식은 시간문제와도 같았으니.
동시대 최고 웹툰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분명 <미생>은 걸작이다. <인간의 숲>의 황준호 작가는 “<이끼>는 내 평생의 모든 노력과 운이 따르면 한 번쯤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생>은 저 하늘나라에 있는 느낌”이라 했고,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 역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만드신 것 같다”고 할 정도다.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디테일한 사건들 속에서 끊임없이 극적 재미와 윤리적 성찰을 담아낸 윤태호 작가는 이번 <미생>을 통해 명실상부 거장의 위치에 올랐다.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건, <미생>의 윤태호는 동시에 <이끼>의 윤태호, <야후>의 윤태호라는 사실이다. 전작들이 졸작이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야후>는 1990년대 한국에서 드러났던 시대적 균열과 부조리에 대해 외면할 수 없는 질문과 분노를 쏟아내던 작품이었고, <이끼>는 폐쇄적인 공간과 몇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만들어낸 엄청나게 밀도 높은 스릴러였다. 굳이 따지면 부정적 기운이 넘쳐나던 이들 작품 이후, <미생>에서 선의를 담은 따뜻한 통찰을 보여줬다는 점이야말로 흥미롭고도 신기한 지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미생>은 동시대의 모순에 대해 거친 분노의 시기를 지나온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왜 소중한가에 대해 답을 내려 한 흔적에 가깝지 않을까. <야후>의 신무학과 <이끼>의 류해국은 현재의 악을 만들어낸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면서
도 연민을 버리지 못한다. 하여 그들은 마음껏 분노하면서도 괴롭다. 하지만 <미생>은 오 차장과 장그래의 유사 부자관계를 통해, 초라해만 보였던 아버지 세대가 버텨낸 하루하루의 무게를 긍정한다. 그 유산을 차곡차곡 자기 안에 쌓아가는 장그래의 성장은, 그래서 일종의 화해처럼 보인다. 자칫 안일하게 그려질 수도 있는 화해의 과정이 충분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연결되는 건, 작가가 매우 오래 세상에 대한 강한 의혹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윤태호 작가의 변화에 대해 나는 발전이라는 말보다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그래서 <미생>이 끝난 지금, 여전히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한 것이리라.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관련영상 미생 윤태호 1/2 (현주의책)
관련영상 미생 윤태호 2/2 (현주의책)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