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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찬반 극명히 엇갈리는 <설국열차>
아트영화냐, 불록버스터냐

등록 2013-08-01 15:45수정 2013-08-01 15:59

설국열차는 육지와 바다를 가로지르며 1년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승객들은 창 밖에 돌아온 같은 풍경을 보며 또 한 해가 흘렀음을 짐작한다.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설국열차는 육지와 바다를 가로지르며 1년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승객들은 창 밖에 돌아온 같은 풍경을 보며 또 한 해가 흘렀음을 짐작한다.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소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영화 <설국열차>의 기차가 터널을 지나 맞닥뜨리는 세상도 온통 하얗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기차는 17년째 얼어붙은 풍경을 뒤로한 채 달리고 있다는 것. 열차 밖 흰 땅에 살아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는 것. 목적지 없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숨 쉬는 이들만이 세상의 마지막 인류라는 것.

서로를 잡아먹던 사람에게 먹을것이 던져지고

8월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설국열차>는 어쩌면 찾아올지 모를 미래에 대한 이야기 혹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온난화로 지구가 병들자 사람들은 기온을 낮추기 위해 ‘CW-7’이라는 화학물질을 뿌리기로 했다. CW-7이 살포되던 날, “온난화의 고통과 두려움이 끝나는 역사적인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던 뉴스 앵커의 멘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의미가 돼버렸다. 이날을 기점으로 온난화는 끝나고 영원한 겨울이 찾아왔다.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오는 환경문제에 대한 근미래적 공포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끈다면, 앞칸부터 꼬리칸까지 경제적 계급에 따라 분류된 기차라는 공간은 현실을 압축한 작은 세계다. 영화 시사와 개봉에 앞서 온라인에 공개된 애니메이션에서 소녀 요나(고아성)가 읊조리는 이야기는, 앞으로 그 작은 세계에서 펼쳐질 싸움의 예고편이다.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떠나기 시작했고, 곧 설국열차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기차에 타기 위해, 마지막 희망을 잡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세상에서 처음 보는 잔인한 풍경이 펼쳐졌다. 죽은 이들을 뒤로하고 기차는 출발했고 그건 세상의 마지막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목적지를 모른 채 달리는 열차가 출발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지만, 사람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기차는 경제적 계급에 따라 철저히 분절된 사회였다. ‘성스러운 엔진’에 가까운 앞쪽 칸은 많은 돈을 낸 자본가들의 차지였고, 악다구니 속에서 겨우 자리를 차지한 소시민들은 꼬리칸을 나눠 썼다. 앞칸 사람들은 따뜻한 스테이크와 차를 마시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좋은 옷을 입고 화려한 화장을 한 채 긴 기차 여행을 즐긴다. 꼬리칸 사람들은 쓰레기장 같은 공간에서 단백질 블록을 배급받아 영양을 보충하며 17년 전 기차를 처음 탔을 때 입었을 법한 낡고 떨어진 옷을 걸친 채 열차 끝에 매달려 있다. 꼬리칸 사람들에게 17년은 길고 잔혹한 역사였다. 탑승 뒤 한동안 아무런 음식도 배급받지 못했던 이들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이들이 탑승한 꼬리칸에 인간애는 온데간데 없어졌고 비릿한 피냄새만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어쩌면 꼬리칸 인구가 수용할 만큼 충분히 줄었다 계산된 다음부터) 단백질 블록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고 물컹물컹한 음식을 받아먹으며 꼬리칸 사람들은 음식이 흘러나오는 반대편 세계가 궁금했다. 가끔 나타나 기차의 창조자 윌포드(에드 해리스)를 찬양하는 총리(틸다 스윈턴)는 왜 모피코트를 두르고 있는가. 앞칸에서 나타난 자들은 왜 우리에게 명령하고 학대하는가. 앞칸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데. 차별에 분노한 사람들은 전진을 시도했고, 17년 세월 동안 이들의 투쟁은 ‘반란’이라 명명되며 여러 차례 실패했다. 영화는 꼬리칸 사람들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또 다른 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심플하고 명쾌한 주제 vs 은유를 위한 은유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오큐파이 운동’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까이 현대차 희망버스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앞칸을 향해 달려가는 분노한 꼬리칸 시민들에게서, 99%가 살 만한 세상을 외치며 월가를 점령했던 이들의 얼굴이 비친다. 꼬리칸 사람들이 도끼로 무장한 무력부대를 만나 어둠 속에서 싸우는 장면에서는, 쇠파이프·소화기로 중무장한 현대차 사 쪽 직원들을 마주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겪은 아비규환이 떠오른다. 하지만 감독은 7월23일 언론 인터뷰에서 “어느 시대나 오큐파이 운동 같은 움직임은 있었다.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며 심플하고 명쾌한 주제”라며 시대를 반영하는 특정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짓지는 않았다.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같은 공간 안에서도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 위부터 설국열차의 2인자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턴), 열차에서 나고 자란 17살 소녀 요나(고아성),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같은 공간 안에서도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 위부터 설국열차의 2인자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턴), 열차에서 나고 자란 17살 소녀 요나(고아성),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CJ엔터테인먼트 제공

7월22일 마련된 기자·배급 시사회 이후 평론가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그런 가운데 한국적 정서가 진하게 묻어나오던 ‘봉준호다움’을 상실했다는 지적은 어느 쪽에서든 동의되고 있는 듯하다. 봉준호다움이란 무엇인가. 봉 감독은 그간의 필모그래피에서 현실의 부조리에 대응하는 한국 소시민의 삶에 주목해왔다. 우리 주변에서 진짜 일어났던 혹은 일어날 법한 사건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은 한국적인 대응 방식으로 사건과 맞선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강아지 실종·살해 사건과 교수로 발탁되고픈 한 남자의 이야기를 엮어 현실 사회의 모순을 그렸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1980년대 군부독재 사회의 야만을 이야기에 녹였다. 첫 장면에 ‘2000년 2월9일’이라고 자막에 명시한 <괴물>은 맥팔랜드 사건(2000년 2월9일 용산 주한미군 부대에서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사건)을 은유하고, <마더>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사건을 통해 현실 구성원과 모성과 충돌하는 사회 질서의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배경 자체가 우리 곁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래 어느 시점을 설정하고 있는데다 인물들 또한 국적 불명의 사람들로 뒤섞여 있어, 물리적으로 ‘로컬의 정서’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어를 쓰는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요나마저 한국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공상과학(SF)의 공간이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한 칼럼에서 분분한 논란을 이렇게 요약했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영화 중 가장 그의 개성이 덜 보이는 작품이며 가장 예술적으로 불균질한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그의 개성은 장르물의 관습 안에서 한국 역사와 사회의 독특한 성격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나온다. 이런 시도가 가장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 작품이 <살인의 추억>이며 이후 거의 모든 봉준호 영화의 비평에서 이 영화는 ‘봉준호다움’의 기준점이 된다. 당연히 이러한 시도는 <설국열차>처럼 거의 추상적인 세계를 다루는 시도에서 제거될 수밖에 없다.”

“독재자 세계의 진실을 본다면”

‘봉준호 영화’를 떠나 이야기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 이 영화가 기존 봉준호 영화와 다르기 때문에 실망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액션 또는 모험극인 이 영화의 이야기가 과연 흥미로운가가 문제다. 앞칸까지 가기 위한 모험들이 흥미롭기보다는 뒤죽박죽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적은 알겠는데 인물들의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중간 인물이 죽을 때 감흥이 없다. 인물과 공감해 거기에 빨려들면서 관객이 울고불고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앞으로만 달려가는 열차라는 공간의 질주하는 쾌감 같은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아직 좀 아리송하다. 8월1일 개봉 이후의 반응이 궁금하다. “할리우드에서는 중저예산 아트하우스 영화고 우리나라에서는 블록버스터급인데, 아트하우스 영화로 보기에는 상업적이고 블록버스터라고 하기엔 압도적인 느낌이 적고…. 포지셔닝이 어중간해서 관객이 어떤 평을 내릴지 궁금하다.” 심씨는 이야기 구조에 대한 아쉬움도 지적했다. “은유를 위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질주하는 기차의 이미지, 유한계급의 비도덕성, 무한계급의 반란이 주는 이미지가 신선하지 못했다.” 반면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현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뭐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잘못 사고된 혁명론의 한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국가권력 탈취가 혁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흔히 말하는 정권을 바꾸면 될 테다 하는 식의 생각이 얼마나 한심하냐는 거지. 우여곡절 끝에 우두머리(윌포드)를 만났는데 잘할 수 있으면 네가 해봐라, 라고 말했을 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할 텐가.”

그래서 “현실의 사건에 빗대진 않았지만 가장 보편적 현실을 반영한다”는 이 SF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은 7월23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더>에서와 같은 절망의 나락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체제를 유지하려는 독재자의 논리는 그럴듯하고 설득력 있지만 그건 말의 논리일 뿐이다. …그 세계의 진실을 본다면 인간은 결국 절망적인 시스템으로부터 탈출을 선택할 것이라고 봤다.” 각자의 욕망을 가진 이들이 열차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무심한 눈이 녹아내려 기차는 전복되고 만다. 살아남은 자들은 감독의 말대로, “탈출을 선택”했다. 17년간 얼어붙었던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미궁이다. 어쨌거나 한 세계를 지배한 거대한 시스템이었던 기차가 드디어 무너졌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송강호 역이 원작에 있나요?

<설국열차>는 오래된 이야기다. 작가 자크 로브가 1970년대부터 그림 작가 알렉시스와 함께 매만져온 이 이야기는 1977년 알렉시스가 세상을 떠나자 출발도 하기 전에 멈춰버렸다. 다시 오랫동안 그림 작가를 찾아온 자크 로브가 그림 작가 장마르크 로셰트를 만나면서 <설국열차>가 드디어 출발했다. 1984년 1권 ‘탈주자’가 출간됐다. 하지만 1권이 출간되고 오래 지나지 않은 1990년 스토리 작가 자크 로브가 별세하고, 1권 발행 뒤 15년 만에 장마르크 로셰트와 스토리 작가 뱅자맹 르그랑이 의기투합해 2권 ‘선발대’(1999년), 3권 ‘횡단’(2000년)이 발표된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오래 여행한 원작 만화는 영화와 같고도 다른 이야기다. 기본 설정은 같다. 지구에 긴 겨울이 불어닥치고 1001량의 열차 안에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탑승한다. 열차 속 세상이 계급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설정도 원작과 영화 모두 같다. 반면 영화에서는 재앙의 배경에 대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공적으로 CW-7을 살포하면서 혹한이 찾아왔다고 설명하지만, 원작은 동서 냉전 시기 기후 무기가 개발됨과 동시에 대폭발이 일어나 재앙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또한 영화는 단 한 대의 열차만이 세상의 마지막 인류를 구원했다고 묘사되지만, 원작은 1권에서 첫 번째 열차가 부서지고 2권에서 또 한 대의 열차가 있다는 설정이다. 좀더 발전된 제2열차는 얼음을 부수며 전진할 수 있어 쇄빙열차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속 열차는 1권과 2권의 열차를 합쳐놓은 이미지인 듯하다. 원작에서는 영화에 없는 외부 정찰대가 등장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인 캐릭터 남궁민수, 요나 등은 원작에 없다. 투쟁 주도자 커티스 등도 모두 영화를 통해 새로 빚어진 캐릭터다. 영화에는 열차 생활 기록자로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 명이 등장한다. 그가 그린 그림은 투쟁 과정의 기록화이자 아이를 잃은 타냐(옥타비아 스펜서), 앤드류(이완 브렘너)에게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되는데, 이 그림들은 장마르크 로셰트가 직접 그렸다.

원작 만화는 2004년 국내에 출간됐다가 절판됐고 올해 영화 개봉에 맞춰 출판사를 옮겨 세미콜론에서 8월에 다시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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