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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 영화에 정말 ‘여성’이 보이던가

등록 2013-08-15 19:44수정 2013-08-16 15:05

주디 갈런드 주연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년·위 왼쪽 사진)에는 주인공 도로시 게일과 착한 마녀 글린다뿐 아니라 악당 캐릭터인 나쁜 마녀들까지 출연진 대다수가 여성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인기가 없다. <스타워즈>에서처럼 비중도 제한적이고 역할도 수동적이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들(아래)은 어떨까? 포스터 각 사 제공
주디 갈런드 주연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년·위 왼쪽 사진)에는 주인공 도로시 게일과 착한 마녀 글린다뿐 아니라 악당 캐릭터인 나쁜 마녀들까지 출연진 대다수가 여성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인기가 없다. <스타워즈>에서처럼 비중도 제한적이고 역할도 수동적이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들(아래)은 어떨까? 포스터 각 사 제공
[문화‘랑’] ‘벡델테스트’

‘벡델테스트’를 아시나요? 영화에서 여성으로서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적어도 두 명 이상은 되는지, 또 이들이 자신의 삶과는 다른 남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헤아려 보는 테스트입니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인데, 영화 속 현실은 어떨까요?
실제 현실에서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 주제 중 ‘남성’은 얼마나 차지할까? 적어도 대다수 흥행영화들 속에서만큼은 ‘대부분’이다. 할리우드뿐 아니라 한국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가 현실의 복사판 그대로일 순 없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가히 ‘불편한 진실’이라 할 만하다. 남녀노소가 즐기는 ‘대중문화의 꽃’ 영화가 ‘젠더’ 개념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척도로, 벡델테스트(Bechdel Test)라는 게 있다. 영화가 관객들의 의식 또는 무의식에 어떻게 ‘남성중심주의’를 주입하고, 이를 다시 흥행코드로 삼는지를 설명해주는 실험이다.

벡델테스트는 미국의 유명 만화작가 앨리슨 벡델이 1980년대 중반 친구와 영화를 보면서 남성 중심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계량화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처음 만들었다. 올해 초 미국의 콜린 스토크스라는 비영리 시민학교 운영자가 ‘영화가 어떻게 남성성을 가르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이 테스트를 다시 소개해 화제가 됐다.

스토크스는 이 강의에서 “(최근 영화에서 여성들은) <스타워즈>에서처럼 딱히 하는 일 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우주를 구원해 준 영웅에게 메달과 윙크로 보답한다. 이렇게 남성 중심적 영화들에서 현실 속 여자아이들은 가부장제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울 뿐이다. 레이아 공주(<스타워즈>의 여성 캐릭터)로부터 ‘남녀 공용의 세상’을 살아갈 때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배울 순 없다”고 설명했다.

기준은 간단, 통과는 지난

테스트 방법은 간단하다. ① 영화에서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명 이상인가? ② 이 여성들끼리 한번이라도 대화를 하는가? ③ 그 대화 속에 남자 주인공에 관한 것이 아닌 다른 주제의 내용이 있는가? 영화 내용이 이 세가지 조건을 통과하는지 본다.

쉽게 통과할 것 같지만 막상 결과는 그렇지 않다. 앨리슨 벡델의 의도 역시 할리우드 영화들이 최소한의 ‘젠더 개념’을 반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주 낮은 기준으로 질문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뜻밖의 결과가 나온다. 특히 큰 자본이 투입된 영화일수록 더 통과를 못한다. 스토크스는 “요즘 영화 상당수가 ‘벡델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일상에서는 두 여자가 (남자 주인공과 관련된 것이 아닌) 어떤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들에서는 굉장히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소한의 젠더개념 3가지 조건
할리우드 영화 45% 통과 못해
올 상반기 한국영화 5대 흥행작
단 한편도 요건 충족하지 못해
영화가 남성중심주의 더 부추겨

실제 지난달 영국 <메트로>는 벡델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는 누리집 ‘벡델테스트 닷컴’(www.bechdeltest.com)이 할리우드 영화 4000편 이상을 분석한 결과, 이 간단한 테스트를 온전히 통과한 영화가 55%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킨 영화는 11%, 한가지 기준만 통과한 영화는 24%, 세 항목 모두 통과 못한 영화가 10%였다. 그나마 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비중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벡델테스트와 별개로 조사 대상 영화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대사가 있는 여성 캐릭터 비율은 28%에 불과하고, 이들 가운데 세명 중 한명이 노출 있는 옷을 입고 나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2011년 미국에서 흥행 100위 안 영화 중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는 11편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국영화 흥행작들 적용해보니

그렇다면 우리 영화들은 어떨까?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한 5편을 골라 ‘벡델테스트’를 적용해봤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들. 포스터 각 사 제공

올해 최고 흥행 기록을 가진 <7번방의 선물>(1281만명)은 벡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만한 영화다. 이 영화에는 드라마 장르답게 많은 여성 등장인물이 나온다. 하지만 이름을 가진 여성은 사실상 주인공 용구(류승룡)의 딸 예승(아역 갈소원, 성인역 박신혜)뿐이다. 시나리오를 살펴봐도 예승을 제외한 다른 역들은 여성으로서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예승 담임, 보육원 교사, 민환 처, 용구 사건 검사’라는 식이다. 지승, 선화, 봉선이란 캐릭터가 있지만 이야기의 단서를 만들기 위해 한장면 정도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베를린>(716만명)과 <은밀하게 위대하게>(695만명)는 첩보 액션 영화의 특성상 애초부터 여성 주인공들이 설 자리 자체가 적다. <베를린>은 이름이 나오는 여성 캐릭터가 단 1명뿐이다. 배우 전지현의 연기가 뛰어났고 흥행이 성공했어도 벡델테스트에선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은밀…>은 배우 김수현을 전면에 내세워 10대 여학생들을 겨냥해 흥행 대성공을 거뒀는데, 이름이 나오는 여성 캐릭터는 3명뿐이고 이들의 대화는 모두 남성 캐릭터들과 나누는 것들이다.

상반기 흥행 4위 <신세계>(468만명) 역시 주경(송지효), 신우(박서연)라는 여성 캐릭터 두 명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대화가 모두 남성들과만 이뤄져 벡델테스트에선 요건 하나만 충족시켰다.

<박수건달>(389만명)은 조직폭력배 2인자가 잘나가는 무속인으로 변신한다는 소재로 여성 무속인과 여의사 등 여럿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역시 이들의 대화는 남성 주인공과 관련된 것으로 한정돼 벡델테스트의 3개 요건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감시자들>도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영화 모두 주·조연급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2~3명 정도만 이름을 갖고 있고, 그나마 이들끼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영화속 현실의 낯섦을 드러내다

벡델테스트는 남성 중심의 영화를 여성 중심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려는 테스트가 아니다. 또 이 세가지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다고 ‘젠더 개념’에 충실하다거나, 하나도 통과하지 못해서 여성성을 왜곡하는 영화라는 뜻도 아니다. 벡델테스트는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영화 속 현실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과 다른 맹목적인 부분이 있다는 걸 환기시킨다. 또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남성 중심적 사고를 더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도 꼬집는다.

페미니스트 저널 <문화미래 이프> 유숙렬 공동대표는 “대중들이 ‘왜 남성 주인공이지?’라는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남성 우위 사회’에 길들여지는 데 영화나 방송이 적지 않은 구실을 하고 있다. 법과 제도적으로 성적 평등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된 게 사실이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남성 편향성은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의 주인공 성별을 바꾸라고 할 순 없지만, 영화나 방송이 우리 사회의 ‘남성 편향성’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면서 대중문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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