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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감기>의 장혁, 수애

등록 2013-08-19 17:44수정 2013-08-19 17:50

[감기] 방점을 찍다
말끔한 차림새로 포즈를 취한 장혁과 수애를 보고 있자니, 치사율 100%의 유례없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창궐한 <감기>의 무대에 있었던 사람들이 맞나 싶다. 오랜 촬영기간 내내 장혁은 계속 얼굴에 흙먼지와 기름때를 뒤집어쓴 채 살았고, 수애도 땀에 전 의사 가운 하나로 버텼다. 말하자면 <감기>는 그들의 스타 이미지를 제로 상태로 초기화하며 시작한 작품이다. 김성수 감독이 보기에 그들은 ‘진짜를 진짜 그대로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영화와 TV를 통해 쌓아온 경험을 이제 ‘관록’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에 올라선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감기>라는 작품이 각자의 어떤 ‘방점’으로 남길 기대했다.

글 : 씨네21 취재팀 | 사진 : 백종헌 |


[수애] 교차점에 서서
인해 역의 수애

수애는 이번에도 독하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외모에 무슨 힘이라도 있을까 싶지만, 의사 인해(수애)는 하나뿐인 딸을 살려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사실상 그것 외에는 시쳇말로 눈에 뵈는 게 없다. 영화 속 상대역 지구(장혁)의 말마따나 ‘이기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정치가도 군인도 하다못해 병원의 동료들마저 그녀를 막지 못한다. 남편(엄태웅)을 찾으러 홀로 베트남으로 떠나는 <님은 먼 곳에>(2008)의 여인이나, 목숨이 위태로운 걸 알면서도 묵묵히 궁궐로 들어가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의 여인이나, 언제나 수애는 불가능한 상황과 마주하며 최대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실존’의 배우였다. 늘 고독하게 자신의 운명과 싸웠던 여자랄까.

얼핏 보면 역시 싱글맘으로 출연한 전작 <심야의 FM>(2010)의 DJ 선영과도 닮아 보인다(그러고 보니 <감기>는 TV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천일의 약속> <야왕> 이후 무척 오랜만의 영화 출연이다). 살인마(유지태)의 지시에 따라 방송을 해야 하는 실시간의 위협 속에서도 “이건 내 방송이야. 내가 끝까지 진행할 거야”라며 의지를 굽히지 않던 고집 센 DJ였다. “<심야의 FM> 때는 아이들과 전화 통화만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만나는 설정인데, <감기>에서는 계속 딸 미르(박민하)와 호흡을 함께한다는 점이 달랐다. 위기를 겪으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딸과의 관계도 엄마라기보다는 거의 언니에 가깝다. 모성애보다는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 투정을 부린다고나 할까. 못됐고 이기적인 모습도 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수애는 촬영현장에 오기 전까지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 스스로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지 않으면 불안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의 주문은 “시나리오를 너무 열심히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물론 정해진 대본은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우왕좌왕 ‘대처’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기존에 했던 영화들과 다른 재난영화라는 각오를 충분히 했지만, 막상 그런 주문을 따르려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지금도 완벽하게 따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고, 이후 TV드라마 <야왕>에서도 그러지 못했다. ‘상황에 나를 맡기고 가자’는 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더라. 그런데 어쩌면 그런 묘한 부적응 자체가 인해 캐릭터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감기>의 인해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결코 재난 상황을 헤쳐나가는 영웅이 아니다. 인해의 목표가 이뤄졌을 때 그것이 모성애나 책임감으로 보기 좋게 귀결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캐릭터다. 착한 구조대원 지구를 이용하는 여자라고 할 수도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가족만 챙기는 못된 여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재난과 맞닥뜨린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풍경이다. 김성수 감독이 ‘촬영과 연기의 현장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수애가 맞닥뜨린 난관은 <비트>(1997)와 <무사>(2001) 등을 만든 ‘마초’ 김성수 감독이 이제껏 다뤄보지 않은 여자 캐릭터라는 점이기도 했다. “오히려 극적인 모성애로 강하게 나가면 쉬웠을지 모르는데, 애틋함과는 거리가 먼 모성애였다. 감독님께서도 ‘내가 남자는 뼛속까지 아는데, 여자는 잘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오히려 나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엄마 같지 않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추가 주문까지 하시니, 좀 ‘멘붕’이 오긴 했다. (웃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애는 <감기>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방점’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내가 배우로서 좀 안일한 걸 추구하는 편인데, 동시에 진부한 것도 무척 싫어한다. (웃음) 그런 점에서 <감기>는 그 교차점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새벽 4시에 ‘기술시사’라는 것도 처음 가봤다. 초반에 로맨틱코미디스러운 장면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도 궁금하더라. 그런데 연기할 때 너무 재밌었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나, 라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조만간 로맨틱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봤다. 나 그렇게 무섭기만 한 여자 아니다. (웃음)”

글 : 주성철 | 사진 : 백종헌


[장혁] 나를 찾아서
지구 역의 장혁

“장혁은 착한데 잘생기기까지 한 동네 형 같은 사람”이라고 김성수 감독은 말했다.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자기 몸이나 잘 챙기라고 타박하고 싶을 정도로 “이타적인” <감기>의 구조대원 지구도 그렇다. 장혁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인 양 지구는 장혁에게 꼭 들어맞는다. 비번인 날 우연히 재난에 휩쓸린 지구는 아무도 그가 구조대원인 걸 모르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인해(수애)가 도망칠 길을 확보했다며 얼른 가자고 채근하는데도 지구는 사람 좋게 웃으며 제 발로 재난 상황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내가 구조대원이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알잖아요. 내가”란 대사로 그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장장 126일에 걸친 촬영 기간 동안 장혁을 가장 힘들게 한 건 “폭염 속의 험난한 촬영”도, “어깨 부상으로 인해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분투했던 액션도, 300여명의 연기자들과 부대끼는 일도 아니었다. “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라”는 감독의 주문이었다. “배우는 스스로를 알리기보다 캐릭터를 알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에 노출된 인형을 캐릭터라 한다면, 나는 안 보이는 데서 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다. 물론 나의 진짜 면면을 조금씩 섞어가며 캐릭터를 이해하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어떤 모습에서부터 그 조종을 시작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이때까지 장혁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대개 평범한 삶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인물들이었다. 전국의 시청자 마음을 삽시간에 낚아챈 <추노>의 대길, 서늘한 눈빛 하나만으로 검사와 변호사보다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의뢰인>의 용의자 철민, 초라한 집안에 열등감을 품은 채 펀드매니저로 악착같이 성공하려 하는 <마이더스>의 도현, 실없이 구는 모습 뒤에 뜨거운 복수심을 감춘 <뿌리깊은 나무>의 채윤이 그렇다. 하지만 <감기>의 지구는 장혁이 연기해온 많은 캐릭터들과 사뭇 다르게 현실에 한 사람쯤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 리얼리티를 가진 캐릭터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꼼꼼히 “공부하는” 습관에 따라 구조대원의 모습을 잘 표현하는 것이 처음 그의 목표였다. 실제로 구조대원들과 어울려 함께 “감자탕에 소주를 마셔가며” 그들의 생활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사극을 하게 되면 그때의 시대상이나 화폐 단위 등 주변 환경에 대한 조사를 하고, 의사 역을 맡으면 의사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연구한다. 내가 현실에서 몸담아보지 못한 상황에 놓여야 한다면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나만의 시각을 찾아야 하는 거다. 그런데 지구는 구조대원이긴 하지만 구조대원이어서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다. 나도 지구라는 ‘사람’을 보여줘야 했다.” 결국 “공부한 것은 모두 버려야 했던” 셈이다.

작품마다 온도 차가 있겠지만 연기도 액션도 늘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주는 장혁은 ‘참 한결같은 배우다’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한다. 연기 경력 17년차의 베테랑임에도 작품의 규모나 성격에 연연하지 않고 틈틈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성실한 배우다. <장혁의 열혈남아>의 출간 역시 의외의 행보인 것 같다가도 어쩐지 장혁이라면 그럴 만하다는 식으로 납득하게 된다. “여행을 갔다가 문득 옛날을 생각하게 됐다. 여행이란 것도 꼭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달 중 하루라도 내 일상을 놓아두고 묘한 생각에 빠지게 되는, 시간의 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모았던 생각의 단편들을 정리한 에세이다. 책을 내기에 시기가 이르지 않냐고? 시기적으로 어떤 때가 적당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TV와 스크린에서 보아온 장혁의 여러 모습과 달리 실제의 장혁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가볍게 던진 질문에도 심사숙고한 뒤 긴 대답을 내놓을 만큼 대단히 진지한 편이다. 군대 내 에이스, 열혈 병사 이미지를 만들어낸 <일밤-진짜 사나이>(이하 <진짜 사나이>)를 두고도 “단순하게 예능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고심해 답한다.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고 나서부터 일주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휴가 나오는 기분을 느끼게 돼 일상이 더 쉬워지고” 편안해졌단다. 정기적으로 혹독한 훈련을 거치게 된 탓인지, 아니면 한차례 독한 감기를 앓고 나서인지 “즐거운 기분으로 40대를 기다리는” 지금, 그는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 보인다.

글 : 윤혜지 | 사진 : 최성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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