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은 역동적인 시대극에 ‘관상’이란 정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소재를 써서 눈길을 끈다. 주연급 배우 6명이 한꺼번에 출연해 볼거리가 더 풍성하다. 주피터필름 제공
[문화‘랑’]영화
한재림 감독 첫 사극 11일 개봉
송강호 김혜수 등 출연진 화려
한재림 감독 첫 사극 11일 개봉
송강호 김혜수 등 출연진 화려
관상은 흔히 미신으로 치부되지만 실은 통계학에 가깝다. 사람들의 얼굴 생김과 삶의 연관성을 통계로 축적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예측한다. 그렇다면 얼굴이 바뀌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기 운명을 바꾸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런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얼굴의 점은 멜라닌 색소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이게 관상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 <관상>(11일 개봉)에서처럼 때때로 ‘작은 점’ 하나가 한 사람의 관상을 바꾸고, 결국 한 시대를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빠트릴 수도 있다.
영화는 조선 초 단종에게 왕위를 빼앗으려는 수양대군(이정재)이 충신 김종서(백윤식) 등 조정의 중신들을 죽이는 계유정난이 배경이다. 역적 집안 후손으로 벼슬에 오를 수 없는 김내경(송강호)은 관직 대신 관상에 통달한다. 어느날 그는 한양 최고의 기생 연홍(김혜수)의 수작에 말려 손님들의 관상을 봐주기 시작하는데, 얼굴 한번 훑어보곤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족집게처럼 알아낸다. 심지어 관상만 보고 탐관오리나 살인범까지 잡아낸다. 그러다가 나랏일까지 맡게 된다. 마침 궁궐 안에서 좌의정 김종서가 역모를 꾸미는 수양대군의 책사를 색출하기 위해 김내경을 끌어들인다. 관상학적으로 보면 계유정난은 호랑이상 김종서와 이리상 수양대군이 조선 초기 국운을 걸고 맞붙은 사건이고, 구렁이상 관상쟁이 김내경이 등장해 호랑이와 이리 사이에서 갈등하다 뜻하지 않게 사건의 결정적인 열쇠를 쥐게 되는 이야기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만큼 이야기 흐름에서 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영화는 ‘운명은 정해진 걸까, 만들어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결말에서 절묘한 반전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놓는다.
영화는 ‘관상’이라는 정적인 소재를 썼지만,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대결구도를 엮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중반 이후 본격 시대극처럼 뒤바뀌는 부분은 다소 혼란스럽다. 무게중심이 ‘관상쟁이 이야기’에서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대결 쪽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탓이다. <연애의 목적>(2005), <우아한 세계>(2007) 등으로 인기를 모았던 한재림 감독의 첫 사극이란 걸 고려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반면 송강호, 백윤식, 이정재, 김혜수 등 거물급 배우 4명이 주연으로 출연해 눈이 호사스럽다. 여기에 ‘요즘 뜨는 배우’ 조정석과 이종석이 가세해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처음으로 정통 사극에 출연한 송강호는 특유의 넉살로 초반 분위기를 이끌다가, 영화 후반 역사에 휩쓸려 풍파를 겪는 개인의 아픔을 흡인력 넘치게 표현했다. 송강호는 “내경은 힘이 없는 한낱 관상쟁이에 불과하지만, 그가 가진 삶의 열정과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삶을 동시에 담아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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