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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9살 소원아, 얼마나 아프니? 나도 아프구나

등록 2013-09-26 19:39수정 2013-09-26 19:42

영화 <소원>은 충격적인 아동 성폭행 사건이었던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사건 자체를 최소화해 보여주고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눈물겨운 과정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필름모멘텀 제공
영화 <소원>은 충격적인 아동 성폭행 사건이었던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사건 자체를 최소화해 보여주고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눈물겨운 과정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필름모멘텀 제공
[문화‘랑’]영화
이준익 감독 2년만의 신작 ‘소원’
아동 성폭력 ‘조두순 사건’ 소재
사건 고발보다 피해자 치유 중점
아역 이레, 데뷔작서 절절한 연기
영화를 보는 게 직업이라도 때로 눈을 감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특히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아동 성폭행을 다룬 영화는 극장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다. 그러나 어디선가, 누군가 이런 현실과 맞서고 있다는 생각에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

영화에서 아동 성폭력은 잦은 논란을 불렀던 소재다. 워낙 민감한 소재인데다, 비슷한 사건의 실제 피해자들로선 영화에 대한 관심 탓에 주변의 터무니없는 편견과 다시 싸워야 하는 ‘3차 피해’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도가니>도 영화 개봉 뒤 실제 가해자의 재수사와 처벌이라는 효과를 거뒀지만, 거듭되는 ‘3차 피해’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또 영화 자체에서도 아역배우들의 정신적 충격에 대한 보호장치를 엄격히 마련하지 않은 채 촬영하는 등 문제가 여러차례 불거져왔다.

이런 면에서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소원>(10월2일 개봉)은 성폭력 소재의 한국 영화에 금도의 경계를 제시하는 선례가 될 듯하다. 영화는 지난 2008년 일어난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9살 소원이 가족이 끔찍한 아픔을 딛고 일상으로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2011년 <평양성>을 끝으로 “만들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을 때 돌아올 것”이라며 상업영화 연출 잠정 중단을 선언했던 이 감독의 2년 만의 복귀작이다.

영화 <소원>은 충격적인 아동 성폭행 사건이었던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사건 자체를 최소화해 보여주고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눈물겨운 과정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필름모멘텀 제공
영화 <소원>은 충격적인 아동 성폭행 사건이었던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사건 자체를 최소화해 보여주고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눈물겨운 과정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필름모멘텀 제공
<소원>은 무엇보다 영화로 인해 불거질 실제 피해자들의 ‘3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섬세한 노력을 들인 점이 눈길을 끈다. 이 감독은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과 두차례 만나 허락을 얻었고, 가족들로부터 “꼭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감독은 영화에서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지 않도록 ‘배변 주머니’ 같은 용어조차 사용을 자제했고 “불손한 태도가 담길까봐 피해자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한 방향만 보고 배우들과 함께 매순간 공손하고 정중하게 인물한테 다가갔다”고 밝혔다. “비슷한 피해를 당한 가족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이상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들한테 가장 행복한 결말은 ‘사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죠. 관객들이 울면서 웃을 때, 그게 따뜻한 웃음이었으면 좋겠어요.”

제작 과정에서도 소원이 역을 맡은 초등학교 1학년 이레(7)를 포함한 아역배우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우선이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이레의 캐스팅 단계부터 부모들과 논의했고, 촬영 중에는 의사들이 이레의 심리 반응에 맞춰 문제가 전혀 없다고 판단할 때만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함께 진행중인 배역 후유증 예방·치유프로그램 지원도 받았다. 영화 개봉 뒤에도 주기적으로 심리 상태를 점검할 예정이다.

영화는 등굣길 9살 소원이한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다. 설상가상 피해를 당한 소원이네 가족이 언론을 통해 노출된다. 아빠 동훈(설경구)은 병원비와 생활비라는 현실적인 어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가해자는 법정에서 “술에 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심신미약’을 이유로 1심에서 12년형을 받는다. “영원히 교도소에 있을 것 같냐”며 협박도 서슴지 않는 가해자가 출소하게 되면, 소원이는 21살이다.

영화는 끔찍한 사건은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한 최소한만을 보여주고, 가족이 상처를 치유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에피소드들을 담담히 펼쳐놓는다. 특히 마음을 닫아버린 소원이를 위해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 옷을 입고 흠뻑 땀에 젖은 아빠한테 소원이가 “아빠 맞지?”라며 손을 내미는 장면은 ‘예상 가능한 감동’이 반전 못잖은 영화의 묘미라는 점을 알려준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최근 <감시자들> <스파이> 등으로 액션과 코믹 연기를 주로 했던 설경구가 모처럼 드라마에서 꾸밈없는 연기로 열연했고, ‘미희’역을 맡은 엄지원은 촬영 기간 동안 6㎏을 찌워가며 둘째 아이를 임신한 소원이 엄마 역을 소화해냈다.

특히 일곱살 이레는 사실상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레는 “쉬운 연기를 할 때는 이레답게 했는데, 어렵거나 힘든 장면 찍을 때는 소원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마음을 갖고 찍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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