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 그녀>에는 ‘대세급’ 주인공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심은경을 비롯해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따뜻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예인플러스 제공
‘도가니’ 감독이 만든 코믹 멜로물
‘광해’ 심은경, 70대스런 20살 열연
‘광해’ 심은경, 70대스런 20살 열연
가능할까? 갓 스무살 여배우가 124분짜리 영화를 단독 주연으로 끌고 가는 것이. 할머니가 우연히 젊음을 되찾는다는 ‘타임 슬립’ 이야기인데다 액션이나 청춘남녀의 불같은 사랑 같은 볼거리도 없는 가족 드라마여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영화 <수상한 그녀>(22일 개봉)는 어리지만 준비된 배우를 앞세우고, 잘 짜인 이야기와 검증된 조연급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걸 보여준다. 2011년 영화 <도가니>로 아동 성폭력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던 황동혁 감독은 이런 요소들을 절묘하게 엮으며 코믹 멜로 장르에 도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생선 행상으로 아들 반현철(성동일)을 국립대 교수로 키운 오말순(나문희)은 이제 아들 가족한테 짐스러운 존재가 됐다. 방황하던 어느 날 ‘청춘사진관’에서 “50년 젊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미스터리한 사진사(장광)를 만난 뒤, 실제로 스무살 시절 얼굴과 몸으로 변한다. “한때 노래깨나 했던” 그는 ‘오두리’(심은경)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채 손자 ‘지하’(진영)가 리더로 있는 밴드의 가수로 유명해진다. 또 자신을 아끼는 텔레비전 피디와 닿을 듯 말 듯 사랑의 감정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꿈 같은 시간이 지나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손자를 구하려 젊음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말랑말랑한 남성과의 연애 감성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단독 주연으로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낸 여배우 심은경의 등장은 반갑다. 심은경은 영화 <써니>(2011)에서 ‘욕에 빙의된’ 전학생 나미 역으로 얼굴을 알렸고, 이듬해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왕을 대신해 죽음을 택하는 ‘사월이’ 역으로 최고의 ‘신스틸러’ 구실을 했다.
심은경은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쏟아내며 70대 습성을 가진 20살 ‘오두리’를 자유자재로 연기한다. 실제 나이 쉰살 차이인 박인환(박씨 역)과 알콩달콩 연기에서도 어색함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오두리’의 실체를 알고 “엄마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 시장에서 배춧잎 주워 날 키우던 때로 돌아가지 말라”는 아들을 향해 “그래도 나는 네 엄마가 될 거다. 다시 태어나도 그럴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가 직접 부른 옛날 노래 <나성에 가면>, <하얀 나비> 등은 영화에서 또다른 즐길거리다.
원로급 연기자인 나문희, 박인환은 명불허전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B1A4)’의 리더 진영과 개그우먼 출신의 김슬기(하나 역), 김현숙(나영 역)과 영화의 어울림도 보기 좋다. 최근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등에서 인기를 끌었던 성동일은 모처럼 웃음기를 뺀 연기로 균형추 구실을 한다. 영화의 끄트머리, 박씨가 오말순이 찾았던 ‘청춘 사진관’과 우연히 만난 뒤 변신한 모습으로 깜짝 놀랄 만한 카메오가 등장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영화 <수상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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