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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얽히고설킨 진짜·가짜들, ‘진짜’는 따로 있을까

등록 2014-02-13 19:57수정 2014-02-15 17:33

진짜는 어디 있을까? 영화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사기꾼들을 동원한 함정수사로 거물급 정치인들을 잡아들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거짓’을 동원해 먹고사는 사기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역시 ‘진짜’를 찾아 헤맨다.  누리픽쳐스 제공
진짜는 어디 있을까? 영화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사기꾼들을 동원한 함정수사로 거물급 정치인들을 잡아들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거짓’을 동원해 먹고사는 사기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역시 ‘진짜’를 찾아 헤맨다. 누리픽쳐스 제공
[문화‘랑’] 영화
미 함정수사 실화 ‘아메리칸 허슬’
선과 악 이분법의 패러독스 그려
올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보는 재미, 인간적 울림 두루 갖춰
1978년 미국에 ‘압둘 사기사건’이 벌어졌다. 이름만 보면 ‘서울 사는 김씨’처럼 흔하디흔한 아랍 출신 잡범이 3류 사건을 벌인 것 같지만,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정·재계를 포함한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미 연방수사국 수사관 존 굿과 앤서니 아모로소가 “누구든 거물로 딱 네 명만 잡아넣자”며 정치인이 포함된 인사들을 뇌물수수 사건으로 엮기 위한 전략을 짠다. 이들은 때마침 사기 혐의로 붙잡힌 희대의 사기꾼 멜 와인버그에게 ‘범죄 혐의 세탁’ 조건을 제시하며 끌어들여 ‘대어급 함정수사’를 벌인다. 아랍의 한 족장이 뉴저지 카지노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고 꾸며 정치인들을 끌어들인 뒤,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는 현장을 포착한다. 이 사건으로 하원의원 6명과 상원의원 1명, 뉴저지 캠던의 시장이 실제로 ‘낚였다’.

당시 사건은 ‘압둘’이란 이름과 사기 사건을 뜻하는 ‘스캠’(scam)을 조합한 ‘앱스캠 스캔들’로 불렸는데, 데이비드 러셀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아메리칸 허슬>(20일 개봉)을 만들었다. 러셀 감독은 “실화를 가져왔지만 사건 자체를 부각하려는 게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들한테도 진심이 있었고, 그들 모두 각자의 삶을 제대로 살길 원했던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실체와 진심이 어떤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기꾼들이 대거 등장한다. 연방수사국 수사관 리치 디마소(브래들리 쿠퍼)는 ‘사기 수사’로 정치인들을 노린다. 사기 혐의로 붙잡힌 ‘역대급 사기범’ 어빙(크리스천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애덤스)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 자격으로 ‘압둘씨 사기사건’에 가담한다. 애초 뉴저지 시장을 포함해 몇몇 정치인을 노렸던 게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연방의회 상원의원과 피도 눈물도 없는 마피아 조직 보스 텔레지오(로버트 드니로)까지 연루돼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어빙의 사고뭉치 아내 로절린(제니퍼 로런스)이 마피아 조직의 하수인과 사랑에 빠져 남편의 계획을 폭로하면서 어빙과 시드니는 목숨을 내놔야 할 위기를 맞는다.

중동 마을의 족장으로 변장한 미 연방수사국 요원과 사기꾼한테 주요 정치인들이 농락당했던 실화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140분 동안 관객들의 상식을 끊임없이 뒤엎으며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대사 속에 진짜와 가짜, 배신과 우정, 선과 악, 불륜과 사랑이 난무하며 실소를 자아낸다.

러셀 감독은 한바탕 사기극 속에서 ‘진짜 무엇’이 되고 싶어서 ‘진짜인 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밑바닥 심리를 절묘하게 뽑아냈다. “끗발 한번 날리고 싶어 ‘진짜 가짜’가 되려”는 어빙과 시드니, 누군가한테 ‘진짜 사랑’을 받고픈 어빙의 아내, 현실의 명예를 위해 ‘사기 사건’을 동원하는 수사요원 리치 등 영화 속 인물들이 보통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이려 자신의 감정마저 속였던 어빙이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다. 흑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전부 회색이다”라고 내뱉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흥행 배우들이 영화 속 인물들에 빙의된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체중 20㎏을 찌우고 숱이 한참 부족한 ‘알머리’로 등장해 사기꾼 어빙 역을 연기한다. ‘혹시 그의 배우 이전 모습이 저랬을까’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완벽한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 <헝거 게임>의 여전사 제니퍼 로런스를 비롯해 제이미 애덤스, 제러미 레너, 브래들리 쿠퍼, 로버트 드니로 등 명배우들의 연기대결이 볼만하다.

영화는 지난달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두 여배우 에이미 애덤스와 제니퍼 로런스가 각각 여우주연·조연상을 탔다. 영국 아카데미(16일)와 미국 아카데미(3월3일) 양쪽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녀 주연상과 남녀 조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과도한 엄숙주의나 어려운 구성, 기괴한 표현을 쓰지 않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관객들한테 울림을 주는 명작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는 할리우드 제작비로는 중저가인 4000만달러를 들였는데, 지난해 말 북미에서 먼저 개봉해 1억4000만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평단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이 볼거리가 많은 영화라고 검증을 해준 셈이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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