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선
영화 ‘자가당착’ 감독 김선
정치인 비판 이유 ‘제한상영’ 판정
법원 “등급 부당” 감독 손 들어줘
“사전검열 뒤 ‘쓰레기인가’ 자괴감
문제점 고쳐나가는 데 도움되길”
정치인 비판 이유 ‘제한상영’ 판정
법원 “등급 부당” 감독 손 들어줘
“사전검열 뒤 ‘쓰레기인가’ 자괴감
문제점 고쳐나가는 데 도움되길”
형제 영화감독인 김곡, 김선(사진)씨가 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자가당착>)를 만든 것은 2010년. 그러나 영화는 곧 논란에 빠졌다. 여권 주요 정치인들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사실상 상영 불가인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린 것이다. 제작사 쪽은 여기 맞서 법정 공방에 들어갔고, 영화는 4년째 논란이 이어지는 중이다.
법원은 영화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 법원에서도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등급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랜 시간 정치적 이유에 의한 사실상의 사전 검열과 싸워야 했던 김선(36) 감독과 15일 만났다. 그는 “특정 정치인을 비판했다고 심의의 칼날을 들이대는 영등위의 정치적이고 오만한 태도가 극우 누리꾼들의 꽉 막힌 태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영상물 심의에서 ‘특정 계층을 보호하라는 것’은 기업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라는 뜻”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권의 세태를 비판하고 조롱하기 위해 누가 봐도 비사실적인 마네킹과 꼭두각시를 등장시킨 풍자 영화인데다, 영화에서 비판 대상으로 등장하지도 않는 영등위가 왜 대신 기분 나빠하고 상영까지 막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최근 국가정보원이 정치에 개입했다고 떠들썩한데, 규모가 작을 뿐이지 국가 기관이 특정 정치인의 비판을 차단하려고 나섰다는 데서 영등위의 태도도 다를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영화는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가 시위 현장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아버지를 만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쥐떼’들이 포돌이를 공격하고, 상황을 방관하는 포돌이의 어머니 역으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얼굴을 한 인형이 등장한다. 영등위는 영화에 대해 “풍자보단 살의를 품고 덤비는 살인무기처럼 영상 표현이 됐고, 특정 정치인 혹은 국가원수에 대한 살인적 시도를 하고…비윤리적, 반사회적, 반국가적 표현이 있어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2011년 이후 두차례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국내에 제한상영가 극장이 없어 사실상 ‘상영 불가’ 조처다. <자가당착>은 201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았고, 일본에서도 ‘중학생 관람가’로 일반 개봉된 바 있다.
김 감독은 “사실상의 사전 검열을 당하고 나면 ‘내가 진짜 관객들이 볼 수 없는 영화를 만들었나, 나는 쓰레기인가’라는 자괴감이 든다”며 “영화인으로서 악몽이라도 좋으니 꿈을 꾸며 살고 싶은데, 영등위가 어떤 꿈도 꾸지 못하게 아예 잠을 깨우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위가 ‘모든 성인은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특정 연령대의 관객층을 보호한다는 본래 존재 의미를 망각하면서, 영화인과 영화 관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가당착>이 사실상 사전 검열이 자행되는 우리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해주고 있어 영화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죠. 3년 넘게 개봉을 못 한데다, 영등위가 상고까지 할 경우 영원히 관객과 만날 기회를 못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환기시키고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런 어려움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자가당착> 후속편을 준비중이다.
글·사진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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