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정순
원로배우 황정순씨 별세
1940년 15살때 연극배우 데뷔해
50년간 작품 수백편서 어머니역
뛰어난 연기력에 영화상 휩쓸어
장학회로 후학 키우고 유산 기부
1940년 15살때 연극배우 데뷔해
50년간 작품 수백편서 어머니역
뛰어난 연기력에 영화상 휩쓸어
장학회로 후학 키우고 유산 기부
열다섯살에 배우가 된 소녀는 곧 어머니가 됐다. 한 가정의 어머니가 아니라 온 국민의 어머니였다. 그는 너무 뛰어난 연기력 탓에 일찌감치 어머니 전문배우로 자리잡았다. 당대의 청춘 스타 최은희씨와는 불과 한 살 차이였지만 모녀 사이로 출연했을 정도였다. 50년 가까이 은막을 누비며 평생 어머니로, 할머니로 활동해온 대배우 황정순(사진)씨가 17일 별세했다. 향년 89.
1925년 경기 시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40년 동양극장 전속극단인 ‘청춘좌’에 입단해 이듬해 영화 <그대와 나>에 단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300편이 넘는 영화를 비롯해 수백편의 연극과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오가며 ‘한국적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줬다.
특히 68년 배석인 감독의 영화 <팔도강산>에서 고 김희갑씨와 호흡을 맞춰 전국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찾아 나서는 어머니 역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서울 국도극장에서 33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를 필두로 고인은 60년대 최고 여배우로 활약했다. 63년 영화 <새댁>으로 ‘제 2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64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혈맥>으로 ‘제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타는 등 상을 휩쓸었다.
고인은 당대의 명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기파 배우였다.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 <인생차압>, 강대진 감독의 <마부>, <박서방>, 이만흥 감독의 <봄은 다시 오려나> 등 한국 영화사에서 주요한 작품들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김수용 감독은 “왕비부터 미친 여자까지 어떤 배역을 맡겨도 다 해내는 배우”라고 평하기도 했다.
연극계에서도 그의 족적은 컸다. 45년 극단 ‘자유극장’의 창립단원으로 참가한 뒤 <순정애고>, <대지의 어머니>, <역마차> 등 수백편의 작품에서 열연을 펼쳤다. 47년 라디오 드라마 <청춘행로>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성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72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황정순장학회’를 설립해 배우 한혜진 등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을 지원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6년 여성으로는 처음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12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공로상, 지난해 제 5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영화발전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날 유족들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오는 4월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코파에서 ‘고 황정순 추모 특별전’을 열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성규(사업), 딸 일미자씨가 있다. 빈소 서울성모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2)2258-5940.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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