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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무당의 눈으로, 역사가 굴절시킨 ‘개인의 삶’ 보여주고파”

등록 2014-02-24 19:18수정 2014-02-24 21:19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현란한 형식을 동원해 ‘천재 무속인’ 김금화의 아픈 개인사를 보여준다. 24일 박 감독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낮은 존재’였던 무당을 통해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굴절시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현란한 형식을 동원해 ‘천재 무속인’ 김금화의 아픈 개인사를 보여준다. 24일 박 감독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낮은 존재’였던 무당을 통해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굴절시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영화 ‘만신’ 박찬경 감독
무당 김금화(83)에겐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갓난아이 때 숨이 끊어질 뻔했고, 열네살 때 시작한 시집살이에서 개밥을 뺏어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에겐 맨발로 낫 위에 오르고, 해와 달을 동시에 보는 능력이 있었다. 결국 17살 때 “몸의 병,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큰무당이 되겠다”며 내림굿을 받았다. 그는 ‘백정보다 못한 무당’ 취급을 당하면서도, 질곡의 현대사에서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큰무당 ‘만신’이 된다.

독특한 한국적 무속 세계에 주목한 이는 영화 <만신>(3월6일 개봉)을 연출한 박찬경(49·사진) 감독이다. 24일 서울 사당동 독립영화 전용관 ‘아트나인’에서 만난 박 감독은 “사회 계급으로 등록조차 되지 못했던 ‘무당’의 시각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개발독재 시기의 잘못된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굴절시키는지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금화의 일생을 보면,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소집을 피하기 위해 14살 때 조혼하고 ‘무병’에 시달리다 3년 뒤 무속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간첩 취급, 1970년대 개발독재 이후엔 ‘미신’을 조장한다며 천대를 받았다. 남편의 앞길을 위해 이혼까지 해야 했다.

독특한 한국적 무속세계에 주목
무당 김금화 통해 현대사 그늘 조명
“식민시대 유산이 현재를 지배…
성찰 없인 응어리 해소되지 않아”

이승·저승 오가는 굿판 표현 위해
다큐·무가·애니 등 영화에 버무려
연기파 배우들 ‘3인 1역’도 볼거리

박 감독은 “우리 현대사에는 민중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들의 한을 풀어줬던 무당이 민중 속에서 더 핍박받았다”며 “김금화 만신이 시대를 몸으로 이겨내면서도 억울함을 견디기 위해 역사를 의식하고, 무속의 진정한 의미를 알리고 싶어했던 모습을 통해 현대사의 그늘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대중 영화 관객들한테는 박찬욱(51) 감독의 동생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50인으로 꼽힌 미술가이자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온 영화감독이다. 영화로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 박찬욱 감독과 공동연출한 <파란만장>(2011) 등을 통해 주목받아왔다.

박 감독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식민시대 이후 유산이 현재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 시간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한국사람들의 응어리가 해소되기 어렵고, 새로운 사회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도 새마을운동, 광주민주화항쟁, 성수대교 붕괴, 연평해전 등 현대사에 얽힌 김금화 만신의 고통과 헌신이 곳곳에 드러난다.

영화는 억척스럽게 현실에 뿌리내린 한 무당의 삶 자체를 판타지와 다큐멘터리를 뒤섞인 형태로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박 감독은 다큐 영상, 애니메이션, 극 영화, 특수효과 등을 과감하게 버무렸다. 박 감독은 굿판에서 무당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고, 시간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형식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무당이라는 존재가 현실에서 직관과 꿈같은 환상을 겪는 존재인 만큼, 판타지적인 요소는 리얼리티의 일부예요. 무당을 다룬 영화에 판타지가 없는 건 마치 마술사 영화에 마술이 안 나오는 것과 같은 거예요.”

현대음악과 전통 무가 등 음악적인 요소까지 절묘하게 결합시켜,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영상으로 보는 재미도 준다. 여기에 김새론과 류현경, 문소리 등 연기파 배우들이 김금화의 어린 시절부터 장년기를 3인 1역으로 연기해 맛을 더한다.

어린 김금화가 “외기러 왔소, 불리러 왔소, 죽은 쇠를 모아다가 산쇠를 만들러왔소”를 외치며, 무당으로서 자격을 얻는 ‘쇠걸립’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권총, 총알, 카메라 등 ‘죽은 쇠’를 얻는데, 그의 숙명을 상징하는 도구들을 녹여 굿에 필요한 방울과 꽹과리 등을 만드는 장면을 박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공동체에서 평생을 억눌리며 살아왔던 김금화 만신의 과거 모습에서 ‘화를 복으로 갚는다’는 무속에 깃든 용서의 윤리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저 높은 곳에 있는 신의 자비와 다르게 인간 사이의 속된 감정 속에서도 굿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모습이 진짜 무속의 매력입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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