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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집단 따돌림’에 스러진 열네살 소녀의 ‘우아한 거짓말’

등록 2014-02-27 20:04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집단 따돌림’이란 아픈 소재를 통해 가족들 사이에 잊었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영화 <완득이>(2011)의 이한 감독과 원작 소설가 김려령 작가가 다시 만나 또 한번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작품을 내놨다.  무비꼴라쥬 제공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집단 따돌림’이란 아픈 소재를 통해 가족들 사이에 잊었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영화 <완득이>(2011)의 이한 감독과 원작 소설가 김려령 작가가 다시 만나 또 한번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작품을 내놨다. 무비꼴라쥬 제공
[문화‘랑’] 영화
‘완득이’ 작가·감독 재결합 작품
중학생 ‘왕따’ 소재 사실적 묘사
잊었던 가족간의 사랑 그려내
김희애, 21년만의 영화 출연작
까톡, 까톡, 까톡, 까톡….

천지(김향기)가 젓가락을 들 때마다 친구들 휴대전화에 ‘문자 알림음’이 쏟아진다. 뒤늦게 생일파티에 온 천지가 홀로 자장면을 먹고, 반 친구들은 천지를 뺀 단체 채팅으로 ‘울언니 자장면 먹는다’며 비아냥댄다. 일부러 쉴 틈 없이 ‘문자 알림음’을 내며 노골적으로 천지를 따돌리는 것이다. 아빠 없이 자랐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을 배려하고 모나지 않게 행동하던 천지였는데,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교내 집단 따돌림을 주도한 건 뜻밖에 ‘절친’ 화연(김유정)이다. 천지를 은밀히 따돌리는 대신 다른 친구들 마음을 얻는 것이다. 마지막 기댈 곳으로 여겼던 친구 미라(유연미)마저 어느날 등을 돌린다. 자장면집 딸인 화연과 갈등을 두고 “난 자장면이 너무 싫어요. 그것 때문에 나 죽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엄마 현숙(김희애)은 알아듣지 못한다. 결국 천지는 어디부터 꼬였는지 모를 실타래를 풀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한 감독의 영화 <우아한 거짓말>(3월13일 개봉)은 중학생 천지가 교내 집단 따돌림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예민한 소재를 다뤘다. 학교에서 수줍고 말수 적은 아이지만, 집에서 더없이 예쁘고 살갑던 막내 천지. 언니 만지(고아성)가 “‘반듯한 옷 입고 학교에 가겠다’며 교복을 다리던 동생이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났다”며 천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천지가 남긴 다섯개의 쪽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했던 가족한테조차 말 못했던 열네살 소녀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그려진다.

영화에는 너무나 힘겨웠을 ‘카따’(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집단 따돌림)뿐 아니라 일부러 형편에 넘치는 선물 교환을 요구하거나 체육복 뺏어 입기 등 집단 따돌림 사례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들킬까 몰래 우울증 관련 책을 보고, 가족들 앞에서는 밝은 표정으로 늘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원작 소설을 쓴 김려령 작가는 “실제로 우리 아이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어쩌면 그토록 모를 수 있을까?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들여다보고 상처입은 아이들을 꼭 안아줬으면 좋겠다”며 “행위를 가한 이는 충분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이 역시 성장의 일부”라고 했다.

하지만 천지의 가족과 친구들도 저마다 하나씩 ‘거짓말’을 지닌 채 살고, 영화는 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남편 없이 두 딸을 키운 엄마는 ‘힘들지 않다’며 늘 씩씩한 척하고, 냉소적인 만지는 ‘외롭지 않다’며 감정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다. 친구들 역시 소외되는 걸 걱정하며 ‘행복하다’를 되뇐다.

영화는 이들과 화해를 시도한다. 천지는 엄마한테 “씩씩하게 지낸다고 약속해. 안 그럼 내가 속상하니까. 사랑해요 엄마”라는 쪽지를 남겼다. 애증을 남긴 친구들에게도 용서의 말을 적었다.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이제는 너도 힘들어 말기를.”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재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한 감독은 사람들의 어깨를 토닥거리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분노와 답답함을 지나면 어느새 남겨진 이들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만큼 진한 울림을 준다. 천지가 남긴 ‘다섯개의 쪽지’를 따라가는 구성이 묘한 긴장감까지 만들어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최근 여배우들을 앞세운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해 보인다. <101번째 프로포즈>(1993) 이후 21년 만에 영화에 출연한 김희애가 자식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이한 감독이 “삶의 희로애락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라고 평가했던 배우다. <괴물> 등에서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등과 정상급 연기를 보여준 고아성을 비롯해 김향기(14), 김유정(15) 등 어린 배우들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3년 전 <완득이>로 531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한 감독이 당시 원작 소설을 썼던 김려령 작가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이 감독은 “영화를 본 뒤 가까운 사람에게 새삼 한마디 말을 건네고, 곁에 있는 이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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