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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부드럽게 담백하게…독립영화는 지금 세대교체중”

등록 2014-04-17 19:47수정 2014-04-18 14:01

예산이 넉넉지 않으니 배우 섭외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한공주> 이수진 감독(오른쪽)은 “미친 척하고 유명 아이돌에게 섭외 요청을 했지만 ‘까였다’”고 털어놨다. <셔틀콕> 이유빈 감독(가운데)은 “일부 단역은 길거리 캐스팅에 의존했다”고 말했고, <10분> 이용승 감독(왼쪽)은 “연기 잘하는 조연배우들을 다 섭외한 뒤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예산이 넉넉지 않으니 배우 섭외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한공주> 이수진 감독(오른쪽)은 “미친 척하고 유명 아이돌에게 섭외 요청을 했지만 ‘까였다’”고 털어놨다. <셔틀콕> 이유빈 감독(가운데)은 “일부 단역은 길거리 캐스팅에 의존했다”고 말했고, <10분> 이용승 감독(왼쪽)은 “연기 잘하는 조연배우들을 다 섭외한 뒤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화‘랑’] 요즘 ‘잘나가는’ 독립영화 감독 3인방
한국 다양성 영화의 신르네상스? 이 땅의 청춘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면서도 ‘어두운 패배주의’를 걷어낸 젊은 영화들이 최근 해외영화제를 휩쓸고 있다. 요즘 가장 ‘뜨거운’ 독립영화 <한공주> <10분> <셔틀콕>의 감독 3명의 솔직유쾌한 제작 분투기를 들어봤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2012년, “영화가 해낸 최고의 국위선양”이라는 극찬과 함께 한국 다양성 영화(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개봉관 확보의 어려움, 열악한 제작환경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공유됐다. 그러나 <피에타>의 국내 개봉 성적은 생각보다 저조했고, 관심은 ‘잠깐’으로 끝났다.

최근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도 넘지 못했던 ‘다양성 영화’의 벽을 깨려는 새로운 노력들이 늘고 있다. ‘다양성 영화는 거칠고 세서 불편하다’는 편견을 깨고 발랄하고 가벼운 접근 방식으로 무장한 영화들이 늘고 있는 것. 이들 젊은 감각의 영화들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고 있다. 한 쪽에서는 ‘다양성 영화의 신르네상스 도래’라는 희망 섞인 평가도 나온다. 비슷한 시기 개봉을 앞둔 <한공주>(이수진·37), <10분>(이용승·34), <셔틀콕>(이유빈·32)의 감독 3인방을 지난 14일 만났다.

과거회귀, 패배주의 벗어던지고
거창한 주제의식 얽매이지 않아
위기가 되레 질적 전환 앞당긴 듯
영화 촬영기술 발전도 변화 한몫

영화제 호평 불구 흥행 저조한 건
콘텐츠 질과 브랜드 문제 있는것
“관객 1만명만 넘으면 좋겠어요”

발랄한 시선

성폭력에 노출된 한 여고생이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한공주>, 사회 초년생이 맞닥뜨린 비정규직의 현실을 날것 그대로 그려낸 <10분>, 풋풋한 첫사랑과 가족애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려낸 <셔틀콕>. 세 작품 모두 기존의 다양성 영화의 딱딱한 문법에서 벗어나 좀더 개인적이고 담백한 시선으로 접근한다. 비단 세 영화뿐 아니라 최근의 다양성 영화엔 이런 경향성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세 감독은 “다양성 영화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0년간 제가 봐 온 독립영화들은 대부분 과거회귀주의나 패배주의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처럼 그런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감독이 되면서 새롭고 발랄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는 듯해요.”(이유빈) “디지털로 찍으니 필름으로 찍는 것보다 쉽고 가볍죠. 큰 이야기가 아니라 작은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거대한 주제의식이 없는 영화도 찍을 수 있겠다 싶어요. 때론 징징거리고 투덜대는 ‘영상일기’도 괜찮지 않나요?”(이용승) 촬영기술의 발전도 이런 변화에 한몫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수진 감독은 독립영화의 위기가 되레 ‘질적 전환기’를 앞당긴 측면도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관객은 독립영화냐 상업영화냐를 떠나 같은 돈을 내고 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니까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져도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기획단계부터 치밀해질 수밖에 없죠.”

“구질구질하기 싫어요”

독립영화의 제작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세 감독은 모두 “돈 얘기 나오면 구질구질해진다”며 “독립영화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식의 대답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촬영 시작하고 가장 많이 한 말이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3종 세트였어요. 하하. 다 찍고 나면 다신 부탁 안 할 거라고 결심하고 그랬죠. 그래도 <한공주>와 <셔틀콕>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2500만~3000만원 정도 지원받아 상황이 나은 편이었죠.”(이수진) “일단 ‘마더파더 펀드’(엄마·아빠에게 손벌리기)가 가장 일반적이죠. 호호호. 그러고도 모자란 건 주변 사람들한테 닥치는 대로 꿔서 메꾸고요. 그래도 돈이 부족하니까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어떤 부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지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전 끌어모은 돈 중 200만원이나 남았어요. 호호호.”(이유빈) “와우~ 대단한데!”(이용승·이수진) “무엇보다 잔머리가 많이 늘어요. ‘한 번에 몰아서 찍을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돈 덜 들일까’ 궁리만 하니까요. 부탁하는 사람 앞에 장사 없다는 진리도 배웠죠.”(이용승) 신세대 감독답게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쿨한 반응이다.

국외선 환호, 국내선 외면

<한공주>는 독립영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로테르담영화제와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국내외 영화상에서 8관왕을 거머쥐었다. <10분>은 홍콩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셔틀콕>은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등을 받았다. 이렇게 한국 독립영화들이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개봉 성적을 내는 경우가 드물다.

지난해 다양성 영화 순위에서도 10위권 안에 든 한국 영화는 <지슬>이 유일했다. 이런 불일치의 이유는 뭘까? “콘텐츠의 질과 브랜드의 문제라고 봐요. 극장에 가면 같은 다양성 영화라도 코언 형제 영화, 우디 앨런 영화가 걸려 있는데, 굳이 한국 독립영화를 선택하지 않죠.”(이용승) 이유빈 감독은 대기업(상업영화)과 중소기업(독립영화)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실적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도 양극화가 심해졌죠. 제작·광고비용이 크게 늘다 보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간극은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대형 영화의 볼거리와 다른 충만함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죠.”이수진 감독이 이어받았다. “사실 ‘수상=흥행’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아요. 대체적으로 독립영화는 주제의식이 강하죠. 극장을 찾는 이유가 스트레스 해소인데, 독립영화를 보면 더 머리가 아프다는 편견이 있어요. 이걸 깨야죠.”

상을 받은 뒤 피부로 느껴지는 차이가 있냐고 물었다. “가족들이 덜 한심하게 보더라고요. 하하.”(이용승) “내가 헛된 짓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위안 정도죠. 상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골’로 가는 수가 있어요.”(이유빈) “보너스죠. 월급 받으려 회사 다니지 보너스 받으려 회사 다니진 않죠. 기분이야 좋지만.”(이수진)

그러나 불투명한 미래

각종 수상으로 초반 기세가 좋은 세 영화. 흥행에 대한 감독들의 기대감을 들어봤다. “전 딱 1만명이요. 넘으면 스태프들 한번씩 업어주기로 약속했어요.”(이유빈) 너무 소박한 바람이 아니냐고 하자 “업계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기준”이라며 씁쓸해했다. 이용승 감독은 “저는 한 10만명으로 할까요? 아, <한공주> 보신 분들은 꼭 같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묻어가기가 최고죠”라며 웃었다. “좋은 방향으로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본 사람들이 (성폭력 등에 대해) 오해를 양산하면 많이 봐도 좋은 게 아니니까요.”(이수진)

개봉을 앞두고 칭찬 세례가 이어지지만, 독립영화 감독으로 사는 것은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인터뷰 직전 졸업한 학교(단국대)에서 취업률 조사를 한다며 전화가 왔어요. ‘4대보험 되는 직장이냐’고 묻는데, 제 영화 <10분>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이건 뭐지? 하하하.”(이용승) 이수진 감독은 영화를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내 길일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항상 스스로 기한을 정해놨어요. 이번 작품까지만이라고. 지금은 만족스러운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인데, 그것이 안 되면 어느 시점에는 결단해야겠죠.”“오랜 시간 영화를 짝사랑했죠. 아무리 구애를 해도 내게 아무것도 안 줘서 잠깐 포기한 적도 있어요. 이제 기회가 다시 온 셈이니 힘들어도 지금의 행복을 잡아야겠죠?”(이유빈)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주목받는 독립영화 세 편 내용은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
한공주 피해자가 도망치는 불편한 현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도, 학교도 버리고 전학을 가게 된 한공주.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공주는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로 인해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시작하며 희망을 되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학교 학부형들이 공주를 찾아 학교에 들이닥친다. 17살 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영중)

이용승 감독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어떻게 끝날까 걱정하게 하지만 결국 걱정을 희망으로 바꿔놓는다. 마치 한공주의 이야기가 아닌 그를 통해 돌아보는 내 삶에 관한 이야기 같다.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
셔틀콕 첫사랑 뜨거움에 허우적대는 청춘

재혼한 부모가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난 뒤 남이나 다름없는 세 남매 민재, 은호, 은주는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으로 그럭저럭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 은주가 남은 재산 1억을 들고 사라진다. ‘누나는 우리를 버린 걸까?’ 민재는 누나를 찾아 떠나는데, 몰래 차에 탄 은호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셋은 여행을 끝내고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24일 개봉)

이수진 감독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은 성장영화다. 성장은 사소한 것이다. 보지 못했던 걸 보게 된 순간, 알지 못했던 걸 알게 된 순간. 성장하기에 이들에겐 미래가 있다.

이용승 감독의 <10분>.
이용승 감독의 <10분>.
10분 정규직 채용 제의 받은 인턴

방송사 피디 시험을 준비 중인 호찬은 지방 이전을 준비 중인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각종 허드렛일에 주말 등산까지 동행하며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어느 날 정규직 채용 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이미 내정된 ‘낙하산’에 밀린 호찬. 설상가상으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망친 정규직들은 그 책임을 인턴인 호찬에게 돌리는데…. 웃기고 슬픈(웃픈) 88만원 세대의 자화상.

이유빈 감독 이용승 감독의 <10분>은 엔딩이 가장 인상적이다. 흡사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을 떠올리게 한다. ‘10분 안에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를 관객에게 묻는 듯하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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