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스릴러 <연무>의 한 장면. 왜 피해는 국가를 믿는 사람의 몫인가.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기업의 비윤리적인 태도가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관료적 행정체계는 사고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주류 언론보다 대안 매체의 기자가 사건의 본질로 파고들며, 그래도 사람들은 나라가 무언가 해줄 거라 믿지만, 정작 정치인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사진이나 찍으며 이미지 정치를 한다. 아, 웹툰 이야기다. 김은경 작가가 글을, 변기현 작가가 그림을 맡은 <연무>는 동리마을이라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일어난 가스 누출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재난물이다. 마을의 태평화학이라는 작은 공장에서 누출된 가스 때문에 벼는 말라 들어가고 짐승들은 죽고, 마을 사람들은 대피를 한다. 만화에서 그려지는 이 재난이 정말 참담한 건, 정작 재난을 해결해야 할 이들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누출 사고도 심각하지만, 여기에는 휴케미컬이라는 거대 기업의 음모와 시장과의 정경유착이 저변에 깔려 있다. 정확히 이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대체 무엇 때문에 가스 사고가 일어나고 그 가스의 정체는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확실해 보이는 건 단 한 번의 사고로 끝나진 않을 거란 거다. 단순히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동리마을의 이장으로서 독극물이 누적된 마을로 복귀하는 걸 반대하는 성호는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는 시장과, 시장 말만 믿고 복귀를 서두르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 성호의 동생이자 전 소방대원인 기하 역시 이 사고의 배후에는 미심쩍은 것이 있다는 것을,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을 소식지를 만드는 중기는 자신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된 누출 사고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걸 직감한다. 조금 똑똑하고 눈치 빠른 것만 빼면 평범한 이들이지만, 그런 그들의 눈에도 사고의 원인을 파헤치기보다는 수습하고 덮기 바쁜 모습은 더 큰 위험의 전조로 보인다.
하지만 독자로서 <연무>에 가장 깊게 몰입할 때는 다분히 극적인 음모론의 떡밥이 던져질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도시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사소해 보이는 작은 위험을 무시하는 기업과 행정가,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명분을 믿고 따르는 상당수 대중이 차근차근 거대한 사고를 공모하는 시스템이 훨씬 흥미롭다. 굉장한 악마성 없이도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인간의 이기심들이 누적되고 누적되면서 어떤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 이 작품은 보여준다. 이것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야말로 재난물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공포가 아닐까. 대피를 종용하는 성호에게 “나랏님이 알아서 해줄 끼고마!”라 외치며 시스템을 낙관하는 선량한 당사자들을 보며 강한 연민과 답답함이 느껴진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웹툰 이야기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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