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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술에 대한 솔직한 욕망 ‘술먹게 하네’

등록 2014-05-23 18:42수정 2015-10-23 18:20

술집 물건을 가져온 뒤 술을 안 마시겠노라 다짐하는 <술도녀>의 정뚱. 하지만 못 그럴 거란 걸 그도 알고 우리도 안다.
술집 물건을 가져온 뒤 술을 안 마시겠노라 다짐하는 <술도녀>의 정뚱. 하지만 못 그럴 거란 걸 그도 알고 우리도 안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결코 밤에 보면 안 되는 만화들이 있다. 조경규 작가의 <차이니즈 봉봉 클럽>과 <오므라이스 잼잼>, 얌이 작가의 <코알랄라> 등 식도락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녁을 거하게 먹을지언정 야식은 먹지 말자는 다이어트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흔들리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어차피 이 시간에 이런 진수성찬을 차려 먹을 수는 없으니 내일 낮에 먹자고 위안하고 애써 외면하는데, 그런 나조차 피하기 어려운 유혹적인 웹툰이 생겼다. 지난 4월부터 다음을 통해 정식 연재를 시작한 미깡 작가의 <술꾼 도시 처녀들>(이하 <술도녀>)이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으로 만들었을 세 명의 ‘술도녀’ 정뚱, 꾸미, 리우 동갑내기 세 여성은 말 그대로 주당들이다. 취하면 술집의 물건을 들고 오는 주사도 있고, 밤새 달리면 달린 대로 숙취에 구토를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모여 술을 마신다. 물론 종종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할 때도 있지만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안다. 그 다짐은 결코 지켜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다시 술과 숙취와 해장과 술의 무한 루프로 빠지는 것에 대해 딱히 그녀들도 변명하지 않는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은 술이 아니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토로했지만, 그녀들에게 그런 대의명분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본능을 충실히 따를 뿐이다. 어떡하나. 몸에서 원하는데.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장르적 계열을 따지자면 일상 공감물에 가까울 <술도녀>를 앞서 인용한 여러 식탐 자극 만화들의 맥락에서 보게 되는 건 이 지점이다. 유독 술자리가 많고 술 판매량이 많은 한국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술 자체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술도녀>의 주인공들은 술 자체가 맛있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리우에게 정뚱과 꾸미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묻자 “맛있어서”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술이라는 대상에 대한 최상급의 찬사다. 1차, 2차 장소와 안주를 정하는데 고심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술보다는 안주에 우위를 두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소중한 술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성의 있는 제의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술도녀’들이 술에 취해 꼬질꼬질해지는 순간에도 미깡 작가는 그 꼬질꼬질함으로 웃음을 주는 데 만족하지 않고, 술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끝끝내 그려낸다. 만화 속 ‘술도녀’들의 모습을 보고 하하호호 정서적 공감을 느끼면서도 가슴보다 위장이, 눈보다 목젖이 더 격하게 반응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경고한다. 밤에는 읽지 마라. 지금 나처럼 원고를 서둘러 마치고 캔맥주를 사러 새벽에 편의점으로 달려 나가고 싶지 않다면.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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