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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야만의 역사는 머리 아닌 몸으로 기억된다

등록 2014-06-27 18:58수정 2015-10-23 18:18

보는 것만으로 폭력의 두려움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곱게 자란 자식>의 한 장면.
보는 것만으로 폭력의 두려움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곱게 자란 자식>의 한 장면.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인생이 장난>, <12단 곡괭이>, <곱게 자란 자식>의 이무기 작가
하수상한 시절이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잘못된 역사관을 드러내던 이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더니(결국 사퇴했지만), 이제는 일본에서 고노 담화를 검증한다며, 다시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에 스리슬쩍 물을 타려 한다. 한 교수는 기계적 중립에 가까운 태도로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폭력적 이미지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 공부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그것이 어떤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지는 우리 역시 잘 알지 못한다. 미디어다음에 연재 중인 이무기 작가의 웹툰 <곱게 자란 자식>은 그런 면에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인생이 장난>, <12단 곡괭이> 같은 소위 ‘병맛’ 센스의 개그 만화를 주로 그리던 이무기 작가는 이번 <곱게 자란 자식>에서는 어느 전라도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제 폭력의 양태를 진지하게 담아낸다.

작품 속에서 남존여비의 전근대적인 문화와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서도 주인공 깐난과 그의 가족 및 부락민들은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나 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도는 일본 순사 ‘나으리’들과 공출 업무를 담당하는 면서기 박출세의 폭력은 그럭저럭한 일상조차도 무너뜨린다. 장르는 다르지만 <곱게 자란 자식>에서 이무기 작가가 전작들에서 보여준 강점이 발휘되는 건 이 지점이다. 겁 없는 시골 양아치들의 반항과 일탈을 코믹하게 그려낸 <인생이 장난>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의 육체적 위협에선 종종 날것의 두려움이 느껴지곤 했다. <곱게 자란 자식>에서도 일제의 폭력이 다분히 육체적으로 그려진다. 단순히 육체적 폭력을 보여준다는 뜻이 아니다. 주인공 깐난이의 노부모가 박출세에게 구둣발로 생사가 오가도록 얻어맞지만 작가는 그 장면을 세밀히 묘사하진 않는다. 대신 그 폭력에 너덜너덜해진 피해자의 육체의 피로와 무력감을 너무도 당당한 가해자와 대비시키는 방법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고 뭐고 말없이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의 감정을 머리가 아닌 뼛속으로 스미게 한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이 육체적 공감의 힘은 상당해서, 박출세의 이복동생이자 압도적인 완력을 지닌 박운세의 농월 섞인 협박 앞에 깐난을 비롯한 소녀 셋이 숨도 못 쉬고 바들바들 떠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폭력 없이 섹스가 진행되었으니 위안부는 생각보다 인간적으로 운영되었다는 모 교수의 주장이 얼마나 관념적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한 회 한 회 보는 게 힘들지라도, 다시 한번 <곱게 자란 자식>을 추천한다. 야만의 역사는 머리가 아닌 몸에 새긴 상흔으로만 온전히 기억될 수 있는 법이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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