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시그널’ 속 한 장면.
윌리엄 유뱅크 감독의 ‘더 시그널’
막판 반전도 “아하!” 대신 “에잉?”
막판 반전도 “아하!” 대신 “에잉?”
29살 나이에 선댄스 영화제를 뒤흔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메멘토>는 저예산 스릴러 영화다.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관객들을 혼란에 몰아넣는다. 오죽하면 ‘아이큐 테스트용 영화’라는 평가가 나왔을까.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작으로 꼽힌 윌리엄 유뱅크 감독의 <더 시그널>(10일 개봉)은 여러가지로 <메멘토>와 닮았다. 저예산 영화라는 점, 영화를 보는 내내 ‘왜?’라는 질문을 떨쳐버릴 수 없는 점 등이 그렇다.
<더 시그널>은 평범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 명의 친구 닉(브렌턴 스웨이츠), 조나(보 크냅), 헤일리(올리비아 쿡)는 엠아이티(MIT)를 해킹한 천재 해커 노매드(NOMAD)와 우연히 교신하게 된다. 뛰어난 해킹 능력을 바탕으로 세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약을 올리는 노매드. 마침 헤일리의 이사를 돕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 셋은 노매드가 보내는 신호를 따라 그를 찾아가기로 한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음침한 장소. 그곳을 둘러보다 헤일리의 비명소리와 함께 셋은 무엇인지 모를 존재에게 공격을 당하며 위험에 빠진다. 블랙아웃 뒤 눈을 뜬 닉. 손목에는 ‘2.3.5.41’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자신을 데이먼 박사라고 소개한 방호복 차림의 남자(로런스 피시번)는 “세 사람은 외계인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커 격리해야 한다”며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한다. 닉은 헤일리와 조나를 구해 연구소를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영화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연출력에 있다. 관객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지날 때마다 ‘이게 뭐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감독은 새로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깜짝 놀라거나 넋이 나간 듯한 주인공의 표정과 행동을 클로즈업해 먼저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끼’를 계속해서 던진다. 액션신과 추격신에서 선보이는 슬로 모션 등 감각적인 촬영기법도 눈을 사로잡는다.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다져진 유뱅크 감독의 무기가 잘 벼려진 장면들이다.
문제는 차곡차곡 쌓아올린 의문이 후반부로 가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감독이 던져주는 ‘떡밥’에 따라 하나씩 추론을 해나가다 거대한 반전에 맞닥뜨리고, 결국 하나의 퍼즐이 완성되는 ‘쾌감’을 느끼는 <메멘토>와 달리 <더 시그널>은 물음표가 점점 커지기만 할 뿐이다. 한껏 기대를 부풀려 놓고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느낌이다. 마지막 ‘반전’을 마주하고도 관객은 ‘아하!’ 대신 ‘에잉?’ 하는 감탄사를 날리며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물음표는 난무하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한 영화랄까.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연출력만큼은 합격점을 줄 만하지만 뒷심이 부족하다. 유뱅크 감독에게 ‘제2의 크리스토퍼 놀런’이라는 수식어는 어쩐지 버거워 보인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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