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앤드크래딧 제공
심청전 뒤집은 멜로 ‘마담 뺑덕’
‘욕망’에 관한 현대적 재해석
‘욕망’에 관한 현대적 재해석
<심청전>은 ‘효성’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가 죽은 뒤 심봉사가 젖동냥으로 어렵게 키운 심청은 아비의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스스로를 판다. 그리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고전에서 유일한 ‘악역’은 바로 심청의 계모 ‘뺑덕 어멈’이다. <심청전> 속 뺑덕 어멈은 “술 사먹고 고기 사먹고 심봉사 재산을 먹성질로 망하게” 만들 정도로 낭비벽이 심한데다 “행인 잡고 패악하고 신혼집 봉창에 ‘불이야~’라고 외치는” 등 심술궂기가 이를 데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뺑덕 어멈은 왜 악녀가 되었을까? 영화 <마담 뺑덕>(10월2일 개봉)은 ‘<심청전> 뒤집기’, 즉 뺑덕어멈을 주인공으로 원작을 재해석한 이야기다. 뺑덕 어멈도 한때 누군가의 ‘귀한 딸’이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순수한 처녀’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현대의 뺑덕어멈을 위한 변명’이라 해도 좋겠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놀이동산 매표원으로 일하던 ‘덕이’(이솜)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그곳 문화센터 강사로 내려온 교수 심학규(정우성)를 만난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던 덕이는 ‘양복 입은 매끈한 서울 남자’ 학규와 걷잡을 수 없는 불륜에 빠진다. 그러나 학규는 복직이 되어 서울로 돌아가고, 덕이는 철저히 버림받는다. 그로부터 8년 뒤. 학규는 방탕한 생활에 점차 눈이 멀어가는 병에 걸리고, 딸 청이(박소영)는 엄마의 자살이 아빠 탓이라 여기고 반항만 일삼는다. 옆집 여자로 다시 나타난 덕이는 그런 학규와 청이를 파멸로 이끌 복수를 시작한다.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과 ‘복수’라는 두 가지 익숙한 틀에서 전개되는 이 영화의 얼개는 식상하다. 전작 <헨젤과 그레텔>에서 서양 동화를 교묘하고 신선하게 비틀었던 임필성 감독은 <마담 뺑덕>에서도 이런 재주를 발휘해 이 식상함을 뛰어넘고자 한다. 학규를 통해 ‘사랑’과 사랑의 또다른 이름인 ‘욕망’을 배우는 덕이. 학규가 선물한 ‘하이힐’에 몸을 싣고 비틀비틀 걷는 덕이의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첫사랑의 달콤함은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은 배신을 겪으며 복수로 이어진다. 학규 역시 무책임한 ‘수컷’으로서의 욕망과 성공에 대한 세속적 집착으로 폭주한다. 임필성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심청전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외형은 차용하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찍고도 연기력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정우성은 <마담 뺑덕>에서 연기 생활 20년 만에 첫 노출을 감행하며 농익은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정우성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덕이 역의 이솜이다. 거칠고 덜 다듬어진 부분도 있지만, 순수함과 악독함을 오가며 표변하는 연기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뽐낸다. 하지만 고전을 뒤집는 새로운 시도와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만듦새는 아쉽다. ‘잘빠진 치정멜로’라고 하기에도, ‘욕망에 대한 신선한 재해석’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마담 뺑덕>은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그것에는 처절한 대가가 따른다는 흔한 영화적 도식에 빠진 듯 보인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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