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약장수>의 한 장면.
영화 <약장수>
건강식품 팔며 등쳐먹지만
생일날 찾아주는 건 그들뿐
“필요악 아닌지 묻고 싶었다”
건강식품 팔며 등쳐먹지만
생일날 찾아주는 건 그들뿐
“필요악 아닌지 묻고 싶었다”
“애들은 가라, 어른들은 오세요. 이 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1970~80년대 시골 장터에선 약장수가 많았다. 걸쭉한 말솜씨로 약을 팔았다. 요강이 깨진다고 했고,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수십년이 흘렸지만,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판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노인들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떴다방’ 이야기다. <약장수>(감독 조치언)는 ‘노인 고독’의 문제를 떴다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들여다봤다. 질 나쁜 사람들이 순진한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네 맨얼굴이 있다.
신용불량자 일범(김인권)은 대리운전이나 일용직으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지만, 난치병을 앓는 딸아이의 치료비를 구할 길이 없다. 몸부림을 치지만 더 이상 출구가 없다. 결국 노인 상대로 건강식품 등을 파는 ‘홍보관’(떴다방)을 찾는다. 그곳에선 노인들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추고 재롱을 부린다. 떴다방을 꾸려가는 철중(박철민)은 말한다. “세상 어떤 자식이 매일 엄마한테 노래 불러주고 재롱 떨어줘?” 그런데, 철중은 물건값을 받기 위해 할머니들을 겁박하고 손가락에서 반지까지 빼온다.
조치언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을 위해 직접 떴다방에서 생활하면서 취재를 했다고 한다. 영화 장면은 거의 전부 실제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생일을 맞으신 어르신들은 주말에 자식과 밥을 먹지만, 정작 실제 생일날엔 혼자 밥을 먹어야 해요. 물론 장삿속이지만, 떴다방 장사치들이 생일날 혼자 사시는 집에 찾아가 미역국 끓여 같이 밥을 먹어드려요.” 조 감독은 떴다방이 ‘필요악’은 아닌지 묻는다.
현실에 기반했기에, 영화는 ‘70대의 로멘스’를 내건 <장수상회>(감독 강제규) 등과 접근법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 어머니들이 실제 어디에 다니시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속 악역을 맡은 박철민은 기자간담회에서 “할머니들이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촬영하면서 절감했다. 어른들한테는 건강한 휴식처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는 노인 고독 문제를 제대로 포착했다. 하지만 주인공 일범이 딸아이 치료비를 위해 약장수에 나서고, 일범과 가까워지는 할머니 옥님(이주실)이 검사 아들을 뒀다는 설정 등은 좀 상투적이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떴다방이라는 공간을 빼면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는 신파로 느껴진다.
<약장수>는 23일 개봉한다. 올해 상반기 최대의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같은 날이다. 2억2000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여된 이 영화와 일전을 피하기 위해 다른 작품들이 개봉을 앞당긴 상황에서, 제작비 4억원짜리 <약장수>가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박철민은 “힘센 놈이랑 붙어야 야무진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출연료도 거의 받지 않았다. 일정한 관객이 들어 출연료를 제대로 받으면 박수칠 만한 곳에 쓰겠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