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래쉬>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인 쓰레기 매립장에서 사는 14살 소년들의 모험담을 담았다. 가난하고 지저분하지만, 아이들의 영혼은 가장 순수하고 고결하다.
유피아이(UPI) 코리아 제공
영화 ‘트래쉬’ 14일 개봉
매립지서 우연히 주운 지갑 속 비밀
지갑찾는 부패경찰은 고문까지 자행
세 소년 “옳기 때문에” 비밀 풀어가
브라질 정치현실 신랄하게 풍자
단서 좇는 과정 추리물 보는 듯해
매립지서 우연히 주운 지갑 속 비밀
지갑찾는 부패경찰은 고문까지 자행
세 소년 “옳기 때문에” 비밀 풀어가
브라질 정치현실 신랄하게 풍자
단서 좇는 과정 추리물 보는 듯해
대도시 외곽,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로 도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끊임없이 트럭에 실려 들어온다. 겹겹이 산을 이뤘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쓰레기 속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 생계를 잇는다.
영화 <트래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의 대단위 쓰레기 매립지를 배경으로 삼았다. 실제 세계에서 가장 큰 매립지가 있다고 한다. 거대한 매립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지저분하고, 무엇이 깨끗하냐”고. 제목조차 ‘쓰레기’를 뜻한다.
매립지에 사는 14살 ‘라파엘’은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갑을 줍는다. 지갑 속 현금을 빼내 친구들과 잔치를 벌인다. 문제는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그 지갑을 찾아나섰다는 점이다. 보통 지갑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라파엘은 동갑내기 ‘가르도’, ‘들쥐’라는 별명의 친구와 함께 지갑의 비밀을 풀기 위해 나선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들이 지갑을 갖고 있는 것을 눈치챈 경찰이 소년들을 겁박한다. 라파엘은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제 소년들이 지갑의 비밀을 찾는 일은 목숨 걸고 세상과 싸워야 할 문제로 바뀐다. 어른들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가르도는 서툰 영어로 답한다. “옳은 일이니까요.”
영화의 원작은 같은 이름의 소설(앤디 멀리건 지음)이다. 미국도서관협회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유명한 작품이다. 소설을 바탕으로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연출한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가 메가폰을 잡아 브라질 특유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대본은 <어바웃 타임>, <러브 액츄얼리>의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가 맡았다.
소년들이 본격적으로 지갑의 비밀을 찾기 시작하는 중반부터 영화는 추리물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지갑 속 종잇조각 하나까지 모두 비밀을 풀어가는 단서가 된다. 부패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며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세 소년은 각자 ‘작전사령관’과 ‘행동대장’, ‘좀도둑’ 등으로 제 몫을 해낸다. ‘소년판 삼총사’인 셈이다. 19세기 영국을 무대로 가난한 소년이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담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떠올리는 관객도 있겠다.
소년들의 모험이 진행되면서 영화는 진짜 지저분한 게 무엇인지 보여주기 시작한다. 지갑의 비밀, 그 배후에 부패한 유력 정치인이 있다. 그의 ‘충직한 개’인 부패 경찰은 정적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고, 고문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브라질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1970~8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연기파 배우들이 든든하게 영화를 받쳐준다. 빈민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벌이면서 소년들을 돌보는 줄리아드 신부는 <지옥의 묵시록>의 마틴 신이 연기한다.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교사 올리비아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온몸에 문신한 천재 해커를 연기한 루니 마라가 맡았다. 두 사람은 필리핀과 아프리카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자원봉사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부패 경찰을 연기한 셀통 멜루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배우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세 소년은 실제 리우에서 캐스팅이 됐다. 1년 동안 수천명을 대상으로 심사가 이뤄졌고, 힉송 테베스(라파엘), 에두아르두 루이스(가르도), 가브리에우 와인스타인(들쥐)이 뽑혔다. 실제 브라질 빈민가 출신으로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영화는 리우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촬영하려 했으나, 뾰족한 유리조각 등 위험한 물건이 너무 많아 종이나 플라스틱만으로 매립장을 재현한 곳에서 찍었다.
영화의 마지막, 소년들이 찾은 아름다운 해변은 천국의 모습 그대로다. 물론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잠시 행복한 결말을 꿈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 행복한 아이들을 보면, 어른들도 행복해진다. 14일 개봉.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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