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허당에다 막가파까지…스파이가 달라졌어요

등록 2015-05-17 15:18

냉전을 배경으로 한 007 시리즈가 스파이 영화의 고전이라면, 요즘 스파이들은 계급과 성 역할을 전복시킨다. 최근 인기몰이했던 ‘킹스맨’ 영화사 제공
냉전을 배경으로 한 007 시리즈가 스파이 영화의 고전이라면, 요즘 스파이들은 계급과 성 역할을 전복시킨다. 최근 인기몰이했던 ‘킹스맨’ 영화사 제공
턱시도·스포츠차에 본드걸
판타지 살아있는 원조 007
냉전 끝나며 젠틀맨 시대도 끝
요즘은 맨몸 액션·B급인물까지
냉전을 배경으로 한 007 시리즈가 스파이 영화의 고전이라면, 요즘 스파이들은 계급과 성 역할을 전복시킨다.  21일 개봉하는 ‘스파이’. 영화사 제공
냉전을 배경으로 한 007 시리즈가 스파이 영화의 고전이라면, 요즘 스파이들은 계급과 성 역할을 전복시킨다. 21일 개봉하는 ‘스파이’. 영화사 제공
파인(스파이): “핵폭탄의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쏠 테다”

악당: “흥! 날 죽일 순 없어. 핵폭탄 위치는 나만 알거든!”

(재채기 소리 ‘에취’와 동시에 총소리 ‘빵!’)

수전(내근 요원): “맙소사! 왜 죽였어요?”

파인: “고의가 아냐. 꽃가루가 장난 아니란 말야!”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스파이>의 한 장면이다.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콘>이나 <웃찾사>의 한 코너 같다. 지난 2월 개봉해 60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하류 인생 남자가 스파이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비(B)급 스파이물’이라면, <스파이>는 뚱뚱하고 못생긴 내근 요원 출신 여자가 영웅이 되는 과정을 담은 ‘코믹 스파이물’이다.

이쯤 되면 ‘스파이가 달라졌어요’를 찍어야 할 상황이다. 멋진 외모의 ‘남자 요원’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전통 스파이물은 이제 한물간 유행이 돼버린 걸까? 사실 영화 속 스파이 모습은 조금씩 변해왔다. 어떻게, 왜, 어디까지 변해갈까?

■ 스파이물의 살아있는 역사 007 ‘스파이’라는 존재를 본격 각인시키며 인기를 끈 영화는 <007 시리즈>다. 1962년 1편 <007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지난 50여년간 23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숀 코너리를 시작으로 조지 레이전비, 로저 무어, 티머시 돌턴, 피어스 브로스넌, 대니얼 크레이크 등 6명의 ‘제임스 본드’가 탄생했다.

007 시리즈 탄생에는 냉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국과 소련이 과학기술과 첨단 무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이 시리즈에서, 본드는 기상천외한 첨단 무기로 자유 진영을 대표해 소련(혹은 케이지비)에 맞서 싸우고 늘 승리한다.

007 시리즈는 ‘스파이 이미지’를 전세계에 전파했다. 턱시도에 시가를 물고 스포츠카를 타는, 그러면서도 자유분방한 본드는 스파이의 대명사가 됐고 모든 남성의 판타지로 자리매김했다. 매 시즌 얼굴이 바뀌는 섹시한 본드걸도 인기에 한몫을 했다.

냉전의 종식…변화하는 스파이 하지만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 007의 인기도 꺾이기 시작한다.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으로 스파이가 싸워야 할 ‘적’이 불분명해진 탓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냉전이 끝나면서 정치적 ‘흑백논리’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고, 스파이의 임무도 바뀌어야만 했다. 80년대까지 ‘자유와 평화 수호’ 같은 대의였다면, 이후에는 ‘정보 또는 기술 보호’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1편(1996)에서는 지켜야 할 대상이 ‘각지에 배치된 요원 명단’으로 일종의 냉전 후일담 느낌을 줬지만 2편에는 ‘키메라’라는 바이러스와 백신, 3편에서는 ‘토끼발’이라는 신무기로 그 대상이 변화한다.

스파이의 전형성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유형도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트리플 엑스>(2002)가 대표적이다. 주인공 엑스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심취한 막가파 인생으로 “어느날 죽어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존재”라서 스파이로 뽑힌다. 영화는 “슈트 빼입은 젠틀맨 스파이의 시대는 갔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신분과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스파이도 나타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는 그동안 판타지에 가까운 묘사를 벗고 사실주의적이고 존재론적으로 스파이의 삶에 접근한다. 2002년 탄생한 <본> 시리즈 역시 잃어버린 신분과 자아를 되찾기 위한 고군분투 속에서 조직(시아이에이)의 부패와 부정의 그늘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본은 ‘외로운 늑대형 스파이’로 불린다. 액션 역시 첨단기술보다 수건·책·신문 등의 물건과 맨몸을 이용한 사실적 액션이 주를 이룬다.

스파이 변화, 어디까지일까 <킹스맨>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악당은 스냅백을 쓰고 야구점퍼를 입은 힙합 스타일이다. 시종일관 유혈낭자한 살인이 벌어지는데 ‘프리버드’(레너드 스키너드)나 ‘기브 잇 업’(케이시 앤드 더 선샤인 밴드) 같은 어깨가 들썩이는 곡이 흘러나온다.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머리가 하나씩 터지는 장면은 마치 폭죽놀이를 연상케 한다. 전체적으로 B급 감성이 넘실댄다. <스파이>는 ‘남성 스파이’와 ‘보조용 여성’으로 나뉘었던 성 역할을 과감히 전복시킨다. ‘최고의 스파이’라는 남자는 허세에 찌든 ‘허당’으로 설정된다. 시종일관 기존 젠틀맨 스파이에 대한 조소와 야유가 넘쳐나고, ‘잘빠지고 예쁜 여성’이 나오는 진부한 설정도 파괴한다.

하지만 B급 스파이물 전성기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007류의 전통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에도 <미션임파서블5: 로그네이션>(7월 개봉)과 007 24탄 <007 스펙터>(11월 개봉)의 개봉이 예정돼 있다. 정지욱 평론가는 “‘B급 문화’의 유행과 더불어 앞으로도 스파이의 변주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액션·스릴·반전 등의 요소를 골고루 버무릴 수 있는 전통적 스파이물의 인기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