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거장의 탈출구는 이란을 담는 ‘블랙박스’였다

등록 2015-10-28 20:41수정 2015-10-28 21:03

[리뷰] 영화 ‘택시’

‘영화연출 금지’ 자파르 파나히 감독
정부감시 피해 택시에 카메라 달고
직접 운전하며 승객들 모습 촬영
사진 ㈜씨네룩스 제공
사진 ㈜씨네룩스 제공
영화 한번 간단하다.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택시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여러 승객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게 전부다. 이게 영화인가 싶고, 어쩌면 최소한의 성실함도 갖추지 않은 것 같다. <택시>(감독 자파르 파나히) 얘기다.

그러나 이 영화를 어디서 찍었고, 누가 찍었고, 왜 찍었는지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무대는 이란의 테헤란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영화 상영이 가능할 뿐 아니라, 촬영 자체도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2010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뒤 체포돼 ‘20년 동안 영화 연출과 출국 금지’ 선고를 받았다. 당시 전세계 영화인들이 그의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감독은 <오프사이드>(2006), <닫힌 커튼>(2013) 등으로 이미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감독은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가 찾은 방법이 택시를 몰고 거리로 나가는 것이었다. 택시 운전석 앞 티슈통에 카메라를 숨긴 채…. 감독, 주연, 촬영, 편집 등을 모두 그가 혼자 했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연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믿는 것을 존중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어떤 상황에도 영화 제작은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

자세를 고쳐 앉고 영화를 보면, <택시>가 이뤄낸 예술적 성취가 보이기 시작한다. 택시 승객들 면면이 그의 조국 이란의 현실과 민중들의 삶을 대변한다. 외국 영화를 담은 불법 디브이디(DVD)를 팔러 다니는 난쟁이 아저씨도 있고, 당국의 상영 허가를 받을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어린 조카도 삼촌의 택시를 탄다. 인권변호사가 배구 시합을 보러 갔다가 100일 넘게 불법 구금을 당한 소녀를 면회하려 택시를 타는데, 그가 안고 있는 빨간 장미가 너무도 예쁘다. 이란 당국의 사형 집행 문제를 둘러싸고 승객끼리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그러니까 우리나라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토론의 복사판이다.

정치적 비판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할머니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더니 알리의 샘이라는 곳에 가서 낮 12시 정각까지 물고기를 놓아줘야 한다고 우긴다. 일종의 미신에서 비롯된 행위인데, 민초들의 삶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있으며, 인권변호사 등 대부분의 배우들은 실제 인물들이다. 영화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는데, 출국이 금지된 감독을 대신해 영화에도 출연한 어린 조카가 대신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이번달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5일 개봉. 전체 관람가.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