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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비현실 속 현실, 현실적이네

등록 2016-01-17 20:45

일본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사진 영화공간 제공
일본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사진 영화공간 제공
일본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미국에 돈가방 찾아가는 황당 모험
열정 잃은 20대 청춘의 현실 또렷이
모든 영화는 ‘기묘한’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가끔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어 ‘황당’의 수준까지 간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등장인물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행동할 때 독특한 매력이 빚어진다.

14일 개봉한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감독 네이선 젤너, 데이비드 젤너)가 그런 영화다. 설정은 상식을 뛰어넘는데, 인물은 현실적으로 행동한다.

대도시 도쿄에 사는 29살의 ‘쿠미코’(기쿠치 린코)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회사에선 예쁘고 야무진 후배들에게 치이고, 엄마는 시집가라고 들들 볶는다. 외로움과 무력감이 정점에 이른 시점에, 한 동굴에서 누군가 소중하게 감춰둔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파고>(1996)라는 미국 영화인데, 쿠미코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거액의 돈가방을 눈밭에 파묻는 장면을 진짜라고 생각한다.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이 영화는 현실에 기반했다’는 자막을 ‘모든 장면이 다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밝힌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에 쿠미코는 회사 법인 카드를 훔쳐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돈가방을 찾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쿠미코가 처해 있는 현실과 그의 행동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분조’라는 이름의 토끼와 함께 살 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삶의 열정도 잃은 지 오래다. 대도시 속 20대 청춘의 한 모습임에 분명하다. 미국에서 돈가방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전개다. 오직 하나, 영화의 한 장면을 진짜라고 믿는다는 점을 빼면 모두 ‘정상’적인 것이다.

이런 현실과 비현실의 교차는 현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쿠미코의 모험담이 영화를 끌고 가는 기둥이지만, 거꾸로 20대 청춘의 무기력증은 더욱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 헛된 열정밖에는 삶을 채울 게 없는 것일까.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쿠미코의 옷차림에 눈길이 가는데, 사실은 어느 허름한 모텔의 이불에 구멍을 내고 뒤집어쓴 것이다. 제3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12살 이상 관람.

지난달 개봉했던 영화 <마카담 스토리>(감독 사뮈엘 벤체트리트)에도 이런 현실과 비현실의 교차가 빛나는 장면이 있다. 영화는 프랑스의 한 도시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를 무대로 세 가지 만남을 담았는데, 아파트 옥상에 미국의 유인우주선이 불시착한다는 설정이 포함돼 있다.

옥상에서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에 피식 웃음이 나는데, 영화 속에선 나름 설명이 된다. 그리고 미국인 우주비행사는 아파트 주민 할머니의 집에 며칠을 머물면서 서로 친구가 된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지만, 다른 어떤 만남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괴상한’ 상황 설정에, 인물의 행동도 괴상한 <이웃집에 신이 산다>쪽과는 족보가 다른 셈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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