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한 문희 작가의 근작 <바람>. 문희 작가 제공
월요일인 29일 오후 서울 강북 화랑가 곳곳에선 이례적으로 대형 전시 오프닝(개막)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북촌 아트선재센터에서는 문경원·전주호 작가의 대형 영상 설치 기획전인 ‘서울 웨더스테이션’과 타이 작가 코라 크릿 아룬나논차이의 전시 ‘죽음을 위한 노래, 삶을 위한 노래’가 개막했다. 센터의 지하 극장에선 무대와 관객석이 거꾸로 바뀌었다. 객석에서는 삶과 죽음에 얽힌 타이 작가의 난해한 영상이 상영되고 관객은 무대에서 이를 감상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인근 송원아트센터에선 티나킴 갤러리 등 미국 뉴욕 화랑 3곳이 소속 유력 작가들의 출품작들로 꾸린 합동전시회 ‘누적효과’(30일~9월2일)의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북촌에서 거리가 떨어진 성수동 갤러리 구조에서는 ‘붉은 산수’로 알려진 이세현 작가의 신작들을 소개하는 개인전 ‘콘텍스트’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국내 화랑가에서 보통 월요일은 관객이 가장 적은 날이라 전시 오프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전시들이 월요일에 행사를 펼친 이유는 딱 한가지. 이번 주말부터 역대 최대 규모 미술장터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합동으로 개최되면서 화랑가에 흘러넘칠 아트 투어 행렬을 겨냥한 것이다.
새달 2일 시작하는 세계적인 미술장터 프리즈 서울(5일까지)과 국내 최대 장터 키아프(6일까지)가 큰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입장료만 7만원 이상인 두 장터 전시와 별개로 무료 또는 염가에 입장해 대가 명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마당이 내달 풍성하게 펼쳐진다.
30일 오후 6시 서울 삼성동 갤러리 현대 강남스페이스에서 개막식 파티를 여는 미국의 팝아트 거장 케니 샤프 전은 누구나 행사장에 입장해 내한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명품 경매사들의 특별전도 빼놓을 수 없다. 크리스티가 새달 3~5일 여는 영국 작고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의 2인전은 작품 가액만 5천억원이 넘는다. 다만 사전예약이 다 차서 취소분에 한해 추가 신청을 받는다. 필립스는 31일~9월6일 서울 강남 이유진 갤러리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 23인의 특별전을 차린다.
새달 21일까지 서울 뚝섬에서 열리고 있는 한강 조각 프로젝트 ‘낙락유람’(樂樂遊覽)은 키아프·프리즈에 맞춤한 야외전시 마당이다. 뚝섬의 한강 둑길 풀밭에 바람파도를 형상화한 문희 작가의 <바람>을 비롯해 국내 조각가 302명의 작품 1100여점을 전시한다.
양대 장터 주 무대인 코엑스 언저리의 또 다른 아트페어들도 볼만하다. 코엑스에 위치한 고급호텔인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 6층에선 한국 대표 작가 55인 전 ‘디아트플레이스’(9월2~6일)가, 코엑스 지하 스타필드에선 엠제트(MZ)세대 작가 중심의 상생페스티벌전(9월6일까지)이 차려져 비장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인천공항 1터미널 교통센터에선 지난 22일부터 키아프가 선정한 20개 화랑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부스 전시가 이미 열리고 있다.
새달 1, 2일엔 한남동 화랑가와 삼청동 화랑가 중심으로 밤늦게까지 화랑의 작품들을 보고 야행을 즐기는 ‘한남 나이트’ ‘삼청 나이트’ 행사가 프리즈·키아프 연계 행사로 치러진다. 타데우스 로팍의 독일 거장 안젤름 키퍼 개인전(9월1일~10월22일)과 갤러리 현대의 소장 작가 김아영 신작전(9월14일까지), 피케이엠 갤러리의 정창섭 전(10월15일까지), 학고재 화랑의 강요배 근작전(9월30일까지) 등을 밤 12시까지 볼 수 있다. 특히 2일 ‘삼청 나이트’ 행사는 코엑스에서 프리즈와 키아프 개막식 행사가 오후 8시까지 열린 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동선을 북촌으로 끌어들이는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피케이엠 등은 전시장 심야 개방과 함께 브이아이피(VIP) 등을 초청한 특별 파티도 화랑 내 레스토랑과 정원 등에서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온 주요 명문 미술관 관계자와 유명 큐레이터 등이 여러 화랑들을 오가면서 거니는 모습을 이날 저녁 북촌 거리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을 듯하다.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가 국내 대안공간의 젊은 기획자 그룹 ‘웨스’, 재미 미술인 그룹 ‘교포’와 손잡고 통의동 막집(30일~9월7일)과 북촌 투게더투게더(9월2~7일)에서 선보일 필름 특별 프로그램은 젊은 세대 미술인들과 애호가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주목할 만한 작품세계를 지닌 한국 작가 또는 한국계 디아스포라 예술가·팀의 영상작업 10점을 상영한다. 차재민, 장서영, 정지수, 업체, 홍민기, 권동현x권세정, 니키 리, 이재이, 라리사 로저스, 곽영준·김예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프리즈 서울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들어가 감상할 수 있다. ‘가성비 높은 프리즈의 별미’로 입소문이 났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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