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행사에 국악공연 없다니…”
12일 국립극장에 무대 마련
12일 국립극장에 무대 마련
“서울시 주최 8·15 행사에 국악 공연이 하나도 없어요. 초청장이 왔길래 보니까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클래식 공연만 크게 보이더라고요. 내 원 속이 터져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소리꾼 안숙선(57·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 명창이 자리에 앉자마자 푸념을 시작했다. 하얀 모시 저고리가 잘 어울리는 고운 얼굴이 금세 벌겋게 상기됐다.
“8·15가 어떤 날입니까. 당연히 국악 공연이 있어야지요. 안중근도 있고 이순신도 있고 우리 레퍼토리 많이 있잖아요. 만정(김소희) 선생님이 저에게 지어준 3·1절 노래도 있어요. 안 되겠어요. 우리 같이 서울시장실로 들어갑시다.”
지난 2일 낮 국립극장 ‘해와 달’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유영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50·고려대 국문과 교수)에게는 때아닌 숙제가 떨어졌다. 3·1절이나 광복절 등 주요 국가행사 때 공연할 수 있는 창극 대본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선생님(김소희)은 스타였어요. 70년대 중반까지도 그랬죠. 자리가 없어서 공연을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것을 너무 급하게 받아들이다보니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거예요.”
안 명창의 말이 이어지자, 유 감독은 “예전의 국악 애호가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새로운 관객이 생기지 않아 블랭크 같은 게 생긴 느낌”이라고 받았다. 가야금을 하는 송화자씨는 “제일 큰 문제는 학교 교육”이라며 “그래도 몇 년 전에 음악 교과서에 국악이 실리게 됐는데,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악계의 주장 대로 ‘강사풀제’라는 제도가 생겼지만 아직 충분치 않은 모양이었다.
“저도 교육의 심각성을 잘 몰랐는데, 손녀를 키워보니 알겠더라고요. 처음엔 ‘찐득찐득 찐득방아…’ 하는 소리를 가르쳐줬더니 잘 따라하더라구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사다준 시디나 비디오를 듣더니 안 하려고 해요. 거기에 무슨 찐득이가 나오나. 동요나 이런 게 다 서양음악으로 돼 있으니까.”(안숙선)
마무리 화제는 역시 다가온 공연이었다. 안씨는 유수정, 정미정, 김차경, 이영태 등 제자들과 함께 만정 김소희제 <흥보가>를 완창할 예정이다. 제자들과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송만갑에서 김소희, 안숙선으로 강물 흘러가듯 내려가는 김소희제 <흥보가>의 변천을 한 눈에 보여주려는 것이다. 동편제를 바탕으로 하는 김소희제 <흥보가>의 ‘깊은 성음과 멋진 발림, 명확한 시김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자리다. 판소리 중에서도 해학성과 골계미가 가장 뛰어난 <흥보가>는 열대야를 날려버리는데 가장 탁월한 효능을 발휘할 듯하다.
“밤 12시쯤 되면 남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잖아요. 그때까지 관객들을 붙잡아 놓자구요. 11시 무렵에 출출함을 달래줄 막걸리와 국수도 마련하고요.”(유영대) 고수 김청만, 정화영. 12일 저녁 8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야외). 모든 자리 2만원. (02)2280-4115~6.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밤 12시쯤 되면 남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잖아요. 그때까지 관객들을 붙잡아 놓자구요. 11시 무렵에 출출함을 달래줄 막걸리와 국수도 마련하고요.”(유영대) 고수 김청만, 정화영. 12일 저녁 8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야외). 모든 자리 2만원. (02)2280-4115~6.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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