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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버려진 이들을 위하여 펼쳐라, 굿판을

등록 2007-09-06 21:35수정 2007-09-06 21:43

현대무용가 안은미
현대무용가 안은미
‘바리공주’ 무대 올리는 현대무용가 안은미
빡빡머리의 이 여성 무용가에게는 항상 익살스러움과 도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언제나 파격적인 주제, 새로운 몸짓과 이미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현대무용가 안은미(45)씨가 이번에는 한국의 전통설화 ‘바리공주’를 들고 돌아왔다. 공주 신분에도 일곱째 딸이란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나 온갖 고생 끝에 생명수를 구해 숨진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바리데기 이야기를 담은 〈심포카 안은미의 바리※이승 편〉을 13~16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선보인다.

안은미판 바리데기는 단테의 〈신곡〉처럼 이승 편과 저승 편이 합쳐져 종합편으로 완성되는 구조다. 이번에 먼저 ‘이승 편’을 선보이고, 내년에는 ‘저승 편’을 무대에 올린다. 이승 편은 버림의 장부터 시작해 이별의 장까지 일곱 길로 그린다. 바리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주변 인물들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내년 저승 편은 바리가 저승으로 떠나 생명수를 구해 아버지를 살리는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현대무용가 안은미
현대무용가 안은미
그동안 바리데기 설화는 무용뿐만 아니라 영화와 뮤지컬, 연극 등 여러 장르에서 다뤄졌다. 또한 최근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로도 옮겨졌다. 그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우리는 평화를 사랑했던 민족이었어요. 옛날 설화나 동화를 보더라도 누굴 죽이거나 복수하지 않고 참고 이겨냈거든요. 바리도 비록 버려졌지만 사랑의 힘으로 다시 돌려주려고 했잖아요. 자기 하나를 희생함으로써 누군가를 살리려는 민족성. 그런 것을 바리를 통해 보여주려고 해요.”

그는 버려진 공주 바리데기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비극을 상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바리〉를 “버려진 이들을 위한 한판 굿”이라고 설명했다. “제 작품에서 바리는 버려진 사람들을 상징해요. 정치적 난민일 수도, 굶어죽는 아이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이 재해석한 바리는 완전히 새로운 바리를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바리를 다룬 작품이 한둘이 아니지만 대부분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 황석영씨 〈바리데기〉를 읽어보았더니 바리가 수난을 겪는 얼개만 바리데기 설화에서 빌려왔을 뿐 시대와 상황, 내용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제가 만드는 〈바리〉 역시 고전을 비튼 〈신 춘향〉처럼 색다를 겁니다.”

정치적 난민·굶어죽는 아이들…
바리는 누구든 될 수 있어
안은미표 해학과 익살은 물론
춤·노래·드라마 섞은 ‘교향예술’
‘신 춘향’ ‘바리’ 다음엔 ‘심청’
고전을 현대적 그릇에 담는 작업


13일 첫 공연을 앞둔 ‘심포카 안은미의 바리-이승 편’ 연습 장면.
13일 첫 공연을 앞둔 ‘심포카 안은미의 바리-이승 편’ 연습 장면.

그가 지난해 유럽무대에 올려 화제가 됐던 〈신 춘향〉은 춘향이 노처녀로 설정되고 이몽룡과 변사또의 동성애 장면이 들어가는 등 내용이 완전히 새롭고 파격적이었다.

이번 공연은 제목에 들어있듯 ‘심포카’(Symphonic arts)라는 새로운 양식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심포카는 춤과 노래, 드라마 등 여러 연희 양식이 녹아든 ‘교향예술’이란 뜻으로 한국 공연계에서 나온 신조어다. 물론 그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해학과 익살이 큰 틀로 깔려 있다.

그는 “과일주스마다 맛이 다른 것은 사과나 바나나나 포도 등 과일 재료는 똑같지만 그것을 갈아서 섞어 만드는 주스 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며 “무용과 노래와 극을 섞어서 그라인더로 갈아져 새로운 어떤 형식으로 만들고 싶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춤꾼 여덟과 소리꾼 다섯, 연주자 다섯이 모여 1시간20분 동안 전통 움직임에 기반을 둔 역동적인 춤과 동양 민속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공명, 노랫소리를 통해 개성 있는 무대를 꾸민다.

그는 지난해 〈신 춘향〉과 올해 〈바리〉에 이어 〈심청〉도 조만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그가 매달려온 우리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의 과정이다. 그는 “고전을 다른 그릇에 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우리 민요나 판소리도 계속 같은 장소에서 들으니까 촌스럽다는 느낌이 나지요. 다른 그릇에 담으면 소리가 너무 다르게 들려요. 대체적으로 우리가 했던 국악들의 형식을 보면 같은 옷과 같은 장소에서 계속 그 노래를 부르니까 아름다운 노래인데도 뭔가 촌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거여요.”

현대무용가 안은미
현대무용가 안은미
그는 “저나 황석영씨처럼 우리 전통을 여러 그릇에 담아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지난해 선보인 〈신 춘향〉의 경우 국악을 다양하게 이용했는데, 평소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 국악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작업을 통해 이제야말로 ‘안은미 작가론’을 쓸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다른 무용수 12명과 함께 출연해 바리의 영혼 연기를 한다. 원래 바리는 소녀였지만 그가 대본을 살짝 비틀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춘 자웅동체인 ‘사방지’로 설정했다. 더 불행한 우리 이웃과 더 굴곡진 영혼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전체 1시간 20분을 끌어 갈 때 포커스를 어디에 두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왜냐면 전체 줄거리는 바리가 주인공이지만 1부 이승 편에는 “바리가 종점이 아니라 바깥 사람들이 주가 되고 그들이 어우러져 그려내는 상황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역사를 보면 사실 주인공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주위 사람들의 모함 때문에 왜곡되게 인식될 때가 있다”며 “어떻게 보면 그런 게 인생이고 역사일지 모르겠다”고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공연의 고갱이를 묻자 “어떤 장면이 특별한 것은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동이라는 것은 뭉쳐서 와야지 어느 장면이 좋았다고, 어느 아리아가 좋았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게 꼭 필요해야 되는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꽃님아 꽃님아〉 〈바다여 말하라〉를 만든 음악평론가이자 희곡작가인 박용구씨가 대본을, 〈복수는 나의 것〉 〈얼굴없는 미녀〉 〈달콤한 인생〉 〈다세포소녀〉 등 영화음악을 만들고 영화와 무용 등 갈래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곡가인 장영규씨가 음악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02)760-4640.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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