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작가 김명화·배삼식씨
희곡작가 김명화·배삼식씨
공연은 희곡 대본이라는 밑그림에서 출발한다. 희곡작가는 곧 공연의 설계도를 만드는 장인인 셈이다.
김명화(41)와 배삼식(37). 독특하고 고집스런 언어로 침체된 한국 연극계에 신선한 밑그림을 제공하는 두 젊은 극작가다.
인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
고전 비트는 기발한 상상력
여성 앞세운 신작 나란히 김명화씨는 연극평론가와 극작가로 전방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97년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로 등단한 김명화씨는 이후 좌절한 386세대를 그린 <돍날>,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등의 작품에서 늘 시대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건드리며 변화해왔다. 최근에는 월북한 공산주의자가 55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그린 희곡 <침향>으로 최근 제1회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연극계에서 최고의 ‘각색 달인’으로 불리는 배삼식씨는 <허삼관 매혈기> <최승희> <마당놀이 삼국지> 등에서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 치밀한 극 전개, 맛깔스런 화법을 보여주며 히트작가로 자리잡았다. 최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극 <열하일기 만보>로 대산문학상을 안았다. 여기에 마침 연말 연극판에선 두 사람의 신작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배삼식씨의 마당놀이극 <쾌걸 박씨>(연출 손진책)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김명화씨의 <바람의 욕망>은 내달 30일까지 홍대앞 소극장 산울림 무대에서 공연중이다.
우리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극작가인 두 사람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품세계는 달라도 연극이란 한길을 가는 동인인 두 작가는 서로에게 자극과 배움을 얻는다고 격려했다. 배삼식씨는 김명화씨를 “치열함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작가”라 선배를 추켜세웠고, 김명화씨는 “작품에 단단한 깊이가 있어 앞으로도 무언가를 꼭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라고 화답했다. 배삼식씨의 새 마당놀이극 <쾌걸 박씨>는 우리 고전 <박씨전>과 그리스 고전 <리시스트라테>를 섞은 작품이다. 여걸 박씨가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나라로 건너가 청나라 여인들이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성파업을 일으키게 만들어 또다른 전쟁을 막고 잡혀간 조선 공녀들을 구해온다는 이야기이다. 고전을 비트는 작업을 이어온 배삼식씨는 새 작품 <쾌걸 박씨>에서 “복수는 쉽지만 용서와 화해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용서와 화해를 연습하는 연극이 되길 바라는데 그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박씨의 무기를 도술 대신에 여성적인 힘으로 바꿨어요.”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의미를 뽑아내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모든 장르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특히 희곡작가들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만으로는 작품을 쓸 수 없는 것 같아요. 동시대 뿐만 아니라 시대를 가로질러 다양한 목소리가 작품 안에 담겨야 서로 충돌하고, 그러면서 동적이 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고전이 그만한 세월을 견딘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한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삶의 모습들이 담겨있기 때문일겁니다.” 반면 김명화씨의 <바람의 욕망>은 갱년기를 앞둔 여성의 삶과 사랑, 욕망을 그린다. 계속 변화해온 김씨가 이번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노연출가 임영웅(71)씨의 손을 빌어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40대 후반 여성 방송작가 유난희가 17살 아래 사진작가 이명호와 사랑에 빠지며 삶의 위기를 맞이하고, 생의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잔잔히 담아낸다. “40대 후반 중년여성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것이 욕망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어요. 아무튼 그것이 나한테는 생겨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생겨나고 그래서 그것과 만나고 좌절하기도 하는 이야기죠. 처음에는 욕망에 대해 써야겠다고 시작했는데 다 써놓고 보니까 ‘아, 내가 진실에 대해서 쓰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람의 욕망>은 김씨가 신문을 보다가 우리나라 주부의 3분의 1이 외도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쓰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주인공 유난희는 양가집 규수도, 팜므파탈형의 요부도 아닌 욕망에 솔직한 주체로서 우리 시대의 평범한 여자들이다. “그림이 예쁜 연극들이 요즘 트렌드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연극을 별로 안좋아해요. 인간이 보이면서 그림도 보이면 정말 행복하지만 인간이 없고 그림만 있으면 참 공허해요.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두껍고 깊이도 있는 인간을 단단하게 그려내고 싶어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고전 비트는 기발한 상상력
여성 앞세운 신작 나란히 김명화씨는 연극평론가와 극작가로 전방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97년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로 등단한 김명화씨는 이후 좌절한 386세대를 그린 <돍날>,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등의 작품에서 늘 시대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건드리며 변화해왔다. 최근에는 월북한 공산주의자가 55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그린 희곡 <침향>으로 최근 제1회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연극계에서 최고의 ‘각색 달인’으로 불리는 배삼식씨는 <허삼관 매혈기> <최승희> <마당놀이 삼국지> 등에서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 치밀한 극 전개, 맛깔스런 화법을 보여주며 히트작가로 자리잡았다. 최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극 <열하일기 만보>로 대산문학상을 안았다. 여기에 마침 연말 연극판에선 두 사람의 신작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배삼식씨의 마당놀이극 <쾌걸 박씨>(연출 손진책)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김명화씨의 <바람의 욕망>은 내달 30일까지 홍대앞 소극장 산울림 무대에서 공연중이다.
우리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극작가인 두 사람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품세계는 달라도 연극이란 한길을 가는 동인인 두 작가는 서로에게 자극과 배움을 얻는다고 격려했다. 배삼식씨는 김명화씨를 “치열함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작가”라 선배를 추켜세웠고, 김명화씨는 “작품에 단단한 깊이가 있어 앞으로도 무언가를 꼭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라고 화답했다. 배삼식씨의 새 마당놀이극 <쾌걸 박씨>는 우리 고전 <박씨전>과 그리스 고전 <리시스트라테>를 섞은 작품이다. 여걸 박씨가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나라로 건너가 청나라 여인들이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성파업을 일으키게 만들어 또다른 전쟁을 막고 잡혀간 조선 공녀들을 구해온다는 이야기이다. 고전을 비트는 작업을 이어온 배삼식씨는 새 작품 <쾌걸 박씨>에서 “복수는 쉽지만 용서와 화해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용서와 화해를 연습하는 연극이 되길 바라는데 그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박씨의 무기를 도술 대신에 여성적인 힘으로 바꿨어요.”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의미를 뽑아내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모든 장르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특히 희곡작가들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만으로는 작품을 쓸 수 없는 것 같아요. 동시대 뿐만 아니라 시대를 가로질러 다양한 목소리가 작품 안에 담겨야 서로 충돌하고, 그러면서 동적이 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고전이 그만한 세월을 견딘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한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삶의 모습들이 담겨있기 때문일겁니다.” 반면 김명화씨의 <바람의 욕망>은 갱년기를 앞둔 여성의 삶과 사랑, 욕망을 그린다. 계속 변화해온 김씨가 이번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노연출가 임영웅(71)씨의 손을 빌어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40대 후반 여성 방송작가 유난희가 17살 아래 사진작가 이명호와 사랑에 빠지며 삶의 위기를 맞이하고, 생의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잔잔히 담아낸다. “40대 후반 중년여성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것이 욕망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어요. 아무튼 그것이 나한테는 생겨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생겨나고 그래서 그것과 만나고 좌절하기도 하는 이야기죠. 처음에는 욕망에 대해 써야겠다고 시작했는데 다 써놓고 보니까 ‘아, 내가 진실에 대해서 쓰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람의 욕망>은 김씨가 신문을 보다가 우리나라 주부의 3분의 1이 외도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쓰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주인공 유난희는 양가집 규수도, 팜므파탈형의 요부도 아닌 욕망에 솔직한 주체로서 우리 시대의 평범한 여자들이다. “그림이 예쁜 연극들이 요즘 트렌드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연극을 별로 안좋아해요. 인간이 보이면서 그림도 보이면 정말 행복하지만 인간이 없고 그림만 있으면 참 공허해요.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두껍고 깊이도 있는 인간을 단단하게 그려내고 싶어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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